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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h~Olleh! Sanghai

Yeah~Olleh! Sanghai

  • 기자명 지혜현 기자
  • 입력 2009.09.0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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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도시, 상하이를 찾다

 

▲ 상해에 있는 골동품거리인 동타이루는 이름에서 나타내듯이 하나의 자그마한 골목길이 골동품 거리로 이뤄져 있다.
아직 불볕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초보해외여행자에게 더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70년 대 배경의 좁다란 골목 사이로 난닝구 하나 걸쳐 입은 아저씨들 너댓명이 모여 마작 두는 중국을 떠올리는 나로서는 와이탄의 화려한 야경, 젊은이들의 거리 난징동루, 중국의 인사동 예원상장, 예술적 감각이 스며든 타이캉루 예술인단지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내내 모든 것이 신기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중국에서 자본주의의 물결을 가장먼저 받아들였던 상해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중국 대륙과 차별화 된 문화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누구보다도 빠르지만 그 안에 내재된 중국적 색채는 잃지 않는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중 상해에 대한 설명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비약적인 중국의 경제발전을 이끈 것이 상해이고, 그만큼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가장 급격히 변한 곳이 상해다.

약 100년 전, 상해는 중국 땅에 있으나 중국 영토가 아니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땅 따먹기’를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상해가 중국의 금융 중심이 되었을 무렵부터 와이탄에는 대형은행들이 모여들면서 고층 빌딩이 생겨났다. 모래사장과 같던 곳이 높은 빌딩 숲을 이룬 개성 넘치는 건물들.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상해의 오늘과 내일의 상징이 아닐까?

독특한 분위기와 각각의 건축 양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와이탄은 황해로 흐르는 상해의 젖줄과도 같은 황푸강이 흐른다. 이 강변 주변은 세계적인 레스토랑이 즐비해 있어 하늘 높이 솟은 동방명주탑과 시원한 강변 야경을 보면서 저녁만찬을 즐기는 것도 꽤나 낭만적이다.

상해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임시정부청사에는 예상외로 많은 한국관광객들로 가득 차 발 디딜 곳이 없었다. 근처 공원은 입장료가 없어 많은 사람들 더욱 많은 인파로 붐볐고 이곳은 입장료 탓인지 한국인들만 왕래할 뿐이었다. 상해임시정부청사는 3‧1운동 이후 일본 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설립됐다.

 

▲ 상해에 오면 황푸강 유람선타기가 필수 코스이다. 화려한 상해 야경이 두 눈가득 담겨지기 때문이다.

당시 대한 독립을 대외적으로 알리며 일제의 보복을 피해 여러 곳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건물은 꽤 허름하고 소박했다지만 타국까지 와서 독립투쟁을 했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 전시되고 있어 관람하는 내내 코끝이 찡해졌다.

중국의 프랑스조계지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조성된 고즈넉한 분위기의 가로수길, 이국적인 느낌의 건물들과 노천카페, 수많은 공원들 그리고 골목 가득 메운 곳곳에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하는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와이탄의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는 것이 상해여행의 백미라고 친다면 반면 여행에 지쳐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찾는 곳이 이곳이다.

시내처럼 인파로 북적거리지도 않고, 아찔하리만큼의 교통 혼잡도 이곳에서만큼은 잠잠하다. 그만큼 편안하고 소박한 느낌이다. 플라타너스 나무로 녹음진 노천카페에 앉아 시원한 차 한잔을 마시며 바쁜 여행일정 속 사소한 여유로움을 부릴 수 있다.

또한 파주의 헤이리 마을 같은 젊은 작가들의 동방이나 갤러리가 모여 있는 타이캉 예술인단지가 프랑스조계지에 가면 볼 수 있다. 상업적 성향이 짙게 설여 있지만, 현재 이 작은 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는지 개조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문을 연 가게가 그리 많진 않았다.

이렇게 중국 곳곳은 변하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나라보다 더 표현이 자유롭고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나라로 변모할지 모를 일이다.

예원은 상해 구시가지 푸시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명청시대 양식의 정원이다. 중국 정원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정원은 2만평방미터의 면적으로, 명나라 관료인 반윤단이 1559년 개인정원으로 만들기 시작해 거의 20년에 걸쳐 1577년에 완공됐다.

 

▲ 금융의 중심인 상해의 와이탄은 도시만큼이나 화려한 야경이 일품이다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만든 이 정원이 완공됐을 때 그의 부모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그 자신도 몇 년살지도 못하고 병으로 죽었다. 건립 후 상인이 매입해 1760년까지 방치됐다가 1842년 아편전쟁이 일어 영국군이 이곳을 5일간 점령했다고 한다.

태평천국 반란동안 황군에 점령되었다가 다시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심하게 손상을 입었다. 그후 1956년 상해 시 정부에 의해 보수됐고 1961년 일반에 개방됐다. 와이탄, 푸동같은 화려한 신도시와는 반대로 예원으로 들어서는 거리는 타임머신을 탄 듯 보존 잘 된 전통 건물들이 펼쳐져 한층 더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상해에서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었는데 건물마다 줄지은 집이나 아파트 바깥에 빨래를 주렁주렁 널어놓은 모습이다. 습기가 많은 탓으로 이렇게 밖에다 말린다지만, 임시정부청사 바로 옆 건물에 널어놓은 여자 속옷이나 양말 등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경건한 마음으로 찾은 사람들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게 한다.

또 한 가지는 시집 안 간 처녀인지라 시내 한복판에서도 가슴팍 풀어헤친 ‘몸꽝’ 중국남자들에게 화들짝 놀랐다. 그 중 몇몇은 아파트를 사서 리모델링한 후 팔거나 전세를 주는 대단한 갑부들이 속해있다고 하지만 지난해 올림픽을 열었고, 오는 2010년 상해에서 세계적인 엑스포박람회를 개최할 나라가 작은 에티켓정도는 갖춰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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