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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OPEC은 서산 너머로

오늘의 OPEC은 서산 너머로

  • 기자명 계충무
  • 입력 2010.02.04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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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 국가들의 석유는 고유가를 유지하고자 세계 석유시장의 공급을 최종으로 조절하는 수단에 불과하게 됐다. OPEC의 시장점유율이 생산할당제(Quota System)로 인해 크게 감소해 더 이상 생산량을 감축할 수 없게 됐다. 대규모의 에너지생산국인 미국과 구소련(FSU)을 제외하면, 1972년에 OPEC의 석유생산량은 세계 에너지소요량의 50%를 점했으나, 1997년에는 그 점유율이 26%인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와 똑같이 OPEC의 석유생산에 있어서도 1973년에 94%였으나 1997에 52%로 줄었다.

부분의 OPEC 국가들이 시장을 빼앗겼지만 이 가운데 특히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및 쿠웨이트가 실질적으로 가장 큰 손실을 보았다. 그리고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OPEC 시장의 감소는 OPEC 자체에 내재되어있는 취약성 때문이다.

이제 OPEC 국가들은 시장을 조작하고 생산량을 규제할 수 있는 능력이 한계점에 이르렀다. 어느 카르텔이나 효과를 거두려면 시장점유가 충분하고 다른 경쟁자들의 생산량을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 OPEC은 늘어나는 비OPEC의 생산자들을 통제할 수 없게 됐다.

카르텔로서 OPEC의 시장 지배력의 감퇴는 오랫동안 분명했던 사실이며, 그리고 정치적 사건과 외적 요인에 가려져있었으니 이란이라크전쟁과 걸프전은 양국의 석유시장을 엄청나게 축소시켰다. 더욱이 사우디아라비아는 OPEC 내에서 Swing Producer (공급초과 시 감축생산, 공급부족 시 생산증대)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생산량이 크게 감소됐다.

그 이유는 OPEC의 총 공급량을 놓고 여타의 OPEC 국가들은 자국의 할당량을 모두 생산했고 그 나머지만이 사우디 몫이 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우디아라비아는 1985년에 1000만 배럴/일 생산능력을 가졌으나 실제 생산량은 200만 배럴/일에 불과했다. 석유가격을 유지하려고 800만 배럴/일의 생산량을 줄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상가상으로 아라비안 경질원유가 기준 공시가격으로 책정됨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밖에 없는 데 반해 여타 대부분의 OPEC 국가들은 보다 자유스러운 가격으로 판매했다. 이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의 생산량을 증대 하려면 기준 공시가격 체제를 떠나 부득이하게 시장가격에 판매할 수밖에 없어서 결국 공시 가격체계는 유지 될 수 없어 급기야 1986년에 공시 기준가격체계가 붕괴되고 말았다.

그나마 1986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란과 이라크 간에 전쟁의 발발로 300만 배럴/일이 석유 생산 유통시설의 파괴로 공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6년에 일어난 충격만은 피할 길이 없었다.

이 생산량 할당을 통해 유지하려던 유가 안정체계는 붕괴돼 고유가에서 저유가로 곤두박질을 쳤으나 이 저유가 또한 오래 가진 못했으니 그 이유는 내적으로 OPEC 국가들의 재정적 압박이 심했고, 외적으로는 특히 미국과 영국의 생산자들이 가격 급락에 따른 저유가로는 생존의 위협을 받아 이를 벗어나려고 OPEC에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OPEC은 생산할당제와 공시가격제를 다시 정비하여 유가를 $18/배럴로 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의 취약성으로 인한 위험은 계속 되풀이됐다.

특히 수요의 감소가 일어나면 생산량은 할당량을 초과했으니 1991년 걸프전 때 그러했다. 그러나 전쟁과 그로 인한 유엔의 경제 제제는 이라크가 수출하던 300만 배럴/일이 시장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OPEC의 이 불합리한 제도가 그런 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 결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생산량에서 숨통이 트였다. 이라크 수출원유의 80%를 대신해서 생산이 540만 배럴/일에서 800만 배럴/일로 증산할 수 있었다. 만약 유엔의 금수조치가 없었다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적자 재정 파탄에서 헤어 날 수 없었을 것이다.

유엔이 식량을 위한 이라크 석유판매를 일부 허용함에 따라 OPEC은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데 이를 수용할 수 없어 또 다시 1998년에 유가가 붕괴됐다. OPEC은 이라크의 석유수출 재개를 정치적으로 조정하려는 준비없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여타 국가들의 할당량을 강제로 줄임으로써 조정하려는 시도가 무리수였다. 이 유엔 프로그램 하에 이라크는 200만 배럴/일 까지 수출이 가능했다.

최근에 사담정권이 미국의 침공으로 무너지고 새로운 이라크 중앙 정부는 작년말 기 발견된 10여개 광구를 공개 입찰을 통해 분양했으며 이 광구들이 개발되면 6년 후에 1200만 배럴/일이 생산될 것인바 OPEC이 이라크의 원유 생산을 감당하지 못하면 가격 하락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21세기 OPEC

OPEC은 과거의 빗나간 정책에 발목을 잡혀 현재 그 기능을 상실하여 사실상 끝이 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향후 어떤 형태의 석유조정기구가 OPEC을 대체하여 안정적인 유가를 유지시킴으로써 산유국과 소비국을 공히 충족시키며, 또한 석유산업에 투자를 유발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대안을 한번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가격붕괴가 있었던 1998년 초에 만약 OPEC이 끝장이 난다면 또 다른 형태의 OPEC이 창설돼야 한다고 OPEC 회의에서 언급된 바가 있었다. OPEC의 모든 잘못을 비추어 볼 때 공급 조절에 따라 최소한의 유가 안정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석유산업의 건전한 성장은 기대 하기 어려울 것이다.

석유산업은 그 본질상 생산규제를 엄격하게 하지 않으면 큰 폭의 가격변동을 피할 수 없으며, 그리고 역사가 말해주듯이 주요 생산국의 협력과 투자자와 생산자 간에 유기적인 협조가 없이는 석유산업은 급변하며 요동칠 수밖에 없다. 그러하니 석유산업자체의 어떠한 수단에 맡겨져야 한다.

실제로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석유 공급 조정은 주요 국제 석유회사 (소위 7자매, Seven Sisters)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달성됐다. 그리고 비록 인위적이지만 낮은 가격대에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하다가 1973년에 OPEC이 실력을 행사하면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OPEC은 당초의 설립 취지에서 멀어졌으며, 이대로는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

향후 10년간 석유산업의 성장은 유가 안정의 효과적인 장치로 OPEC을 대체하는 새로운 공급 규제 체제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국제적인 석유산업은 오랜 동안 지속된 석유가격의 취약성이 구조적인 변혁을 부추겨 보다 강력한 공급 특히 중동의 산유국의 공급에 집중하려고 한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생산의 협조정책은 한층 더 타당성을 갖게 될 것이다. 비 OPEC 국가의 생산원가는 중동의 생산 원가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생산량의 감소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지난 20년간 중동의 석유생산 감소 추이가 반전되어 증산될 것이다. 물론 이는 석유가격과 석유수요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UAE 등이 보유한 확인 가채매장량은 6600억 배럴로 세계의 63%를 점하며, 그 생산 원가 또한 여타의 산유국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충분한 투자 자본과 기술을 가진 외국 석유회사와 이들 국가와는 자연스럽게 파트너로 맺어질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투자가 얼마나 빠르게 이루어질 것인가는 중동 걸프 국가 자신들의 정책에 달려 있다.

종전의 조광계약을 40%나 유지하고 있는 UAE를 제외하고 모든 중동 걸프 국가는 1970년대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재정문제의 증대로 걸프국가는 석유산업 확장을 을 위한 투자를 자체적으로 할 수 없고 국제적인 석유회사의 참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국석유회사의 참여 정도는 중동산유국의 정책과 외국회사에게 석유사업을 개방하려는 수용태세에 달려 있다. 우선 이라크를 살펴보면 1972년에 제일 먼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며 외국회사의 투자가 저주받은 곳으로 낙인이 찍혔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어떠한가? 이란과의 전쟁, 2번에 걸친 미국과의 전쟁으로 사담정권은 무너지고 유엔의 경제 제재로 국민경제와 사회는 피폐 해질 대로 피폐해 졌고, 설상가상으로 종파와 종족간의 갈등, 주변국의 개입 등 그 참상은 표현할 길이 없다. 이를 조기에 타개하려고, 결국 최초의 국유화를 했던 이라크가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수의 외국석유회사를 불러드리고 있다.

이라크는 지난 1년 반 동안에 11개의 광구개발계약을 외국석유회사와 체결했으며, 현재 240만 배럴/일 생산량이 계획대로 투자가 이뤄지면 6년 후에 지금보다 6배에 달하는 1200만 배럴/일의 생산능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도 광구개발권을 외국회사에 개방하는 것을 공식적으로는 반대 입장이나 1998년 왕세자는 미국석유회사에게 정책변경을 시사한 바 있었으며, 쿠웨이트도 이라크 접경지역의 광구개발에 외국회사의 참여를 넌지시 비추었다.

이렇게 외국회사를 끌어 드리려는 저변에는 우선 긴박한 재정적 부담을 경감시키고, 있을지도 모를 국경 분쟁도 방지 하는 등 과거 외국석유회사를 석유산업 참여를 금지시켰던 정치적인 견해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롭게 움트기 시작한 석유시대의 특징은 몇몇 정치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순전히 상업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서방측의 외국석유회사는 최근 유가 형성 과정을 볼 때 생산원가가 높은 유전을 대체해야 함으로 혈안이 되어 중동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따라서 잘만하면 중동이 이 석유 지정학의 극적인 변화로 지난날의 영광을 되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련의 이러한 사태의 발전은 중동생산능력에 크나큰 영향을 주어 결국 생산량의 조정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OPEC과 같은 기구가 성공하려면 충분한 시장을 점유하고 있어 가격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OPEC이 하듯이 주요생산국들이 과잉생산과 공급부족 사태를 막으려고 투자와 생산계획만을 생각하는 재래식 개념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구조적인 혁신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21세기를 지향하는 OPEC은 그 구조와 스타일을 모두 바꾸어야 한다. 1980년대 가봉과 아쿠아도르가 OPEC을 탈퇴했듯이 모든 소규모 생산국은 결국 OPEC에서 내보내고, 새로운 OPEC은 창설 회원국으로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와 UAE 등을 주축으로 하고, 이에 더해 주요 수출국인 멕시코나 노르웨이와 러시아를 포함시킬 수도 있다.

새로운 OPEC은 재래의 공급 조정자 개념을 탈피하고, 생산할당제를 철폐해야 한다. 그 대신 시장 분배와 가격안정 및 정책적인 협력을 위한 공동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러한 기구의 설립은 충분히 가능하며 필요하고도 타당한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오늘날 석유시장은 생산자의 막대한 생산 수치에 따라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석유는 상품화 됐지만 가격안정을 위해서 건전해야 한다. 비록 유감스러운 OPEC의 역사를 통해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간에 긴밀한 협조와 국제석유회사와의 협력이 세계 에너지 균형 유지에 보다 효과적이라는 점이 입증됐다.

결론적으로 21세기의 OPEC은 합리적인 가격수준의 안정을 위해 주요 산유국들 간에 협조와 국제석유회사와의 협력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내는 공식적인 기반이 돼야만 한다.

 

글: 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계충무 고문은 서울대 경제학을 전공했고 한국전력, 대한석유공사(현 SK), 동아건설 등을 거쳐 한국석유공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한얼상사와 코람자원의 대표이사 활동으로 국제 자원개발 사업에 남다른 성과를 내기도 했으며 현재 HI&T 사장으로 취임해 이라크 할파야 유전개발 사업을 협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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