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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석유는 어디로 흘러가나 (II)

이라크 석유는 어디로 흘러가나 (II)

  • 기자명 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 입력 2013.01.02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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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라시드 호텔의 이모저모

우리 일행은 1994년 6월 20일 저녁 바그다드 알 라시드 호텔에 도착했다. 암만을 떠난 지 14시간 만에 현관에 들어서니 범죄자 아버지 부시가 처참한 얼굴로 맞이한다. 이라크 입장에서 보면 범죄자란 말이 틀린 말도 아닌 듯싶다. 어찌됐던 사막의 먼지로 뒤 덮인 신발로 부시를 밟고 지나갔다. 프론트 데스크에서 접수를 하는데 우선 여권을 보더니 남쪽이냐 북쪽이냐 묻는다. 대한민국 여권만을 보고 남북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쪽이라 하니 다시 한번 쳐다 보며 숙박계를 작성하라고 내 주는데 비교적 까다롭다.

숙박비는 미화로 받고 음식, 세탁, 룸서비스 등은 이라크 현지화(Iraqi Dinar, ID)로 받는 다고 한다. 그런데 환율이 4가지나 있어 어지럽다. 정부 공식 환율은 1이라크 디나르(ID)가 미화 7달러, 호텔환율은 500ID가 미화 1달러, 은행환율은 700~800ID가 미화 1달러인데 암시장에서는 1500~2000ID가 미화 1불이다. 그러니 미화로 지불하는 것은 간단하나 ID로 지불하는 것은 환전 방법에 따라 4, 5배가 다르니 욕심이 고개를 든다.

그런데 네덜란드 친구 M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누군가가 외국인은 공식 환율을 적용 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나니 정신이 멍해진다. 결국 이리 저리 수소문하여 제일 유리한 환율로 지불했다.

호텔방은 거실이 딸린 스위트 룸이며 침대도 킹사이스인데 메트리스는 헐렁한게 형편없다. 피곤한 몸을 뉘 우니 모래 수렁으로 깊숙히 빠져 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냉방기는 훈훈한 바람만 뿜어 낼 뿐 더위를 식히지 못한다. 더위가 온 몸을 감싸니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나 심신의 피곤은 모든 것을 밀어내고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였다. 이슬람 특유의 아침기도 소리에 잠에서 깨니 땀으로 뒤범벅 되어 있으나 피곤은 가셨고, 밖을 내다 보니 어둠의 뒷자락이 아직도 만물을 뒤덮고 있다. 샤워를 하려고 목욕탕에 들어서니 비누는 1960년대 우리 것만 못하고 타울 빛깔은 일제시대 표백하지 않은 광목 빛깔과 형제간이다. 비누와 치약은 준비 하였으나 수건은 가져온 것이 없어 누렇고 거무스름한 호텔 수건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이라크 제일의 호텔이 이러하니 이라크 보통 사람들의 생활상은 어떠하랴 생각하니 측은해진다.

아침은 호텔 식당에서 먹었다. 계란 프라이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빵과 버터, 잼은 완전히 수제품 수준으로 아주 거칠다. 유엔의 경제 제재로 수입제한을 받으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 예를 들자면 학생용 연필조차도 지우개가 알미늄으로 연결되어 군수품으로 규정 금수 품목이 됐다. 식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물품이 수입 금지됐다. 아이들은 영양실조 특히 비타민A가 없어 실명되는 것을 보았다. 한 병원을 방문하니 약품보관실을 보여 주는데 텅 비어 있었다.

호텔 로비에는 십여 개의 잡화상이 즐비했다. 저마다 온갖 장식품, 그릇, 도자기, 찻잔, 카메라, 칼, 시계, 불상, 카펫, 촛대, 유성기, 그림 등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만물상이다. 이 물건들의 원천은 쿠웨이트 침공 시 강탈한 물건이 대부분이고, 먹고 살기 힘들어 부자 들이 소유했던 물건들을 하나 둘씩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니 6·25 전쟁 후 시장에서 온 갓 쓰던 물건을 사고 팔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쿠웨이트 침공 직후 이 잡화상들은 상당한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로렉스 금장 시계를 150달러에 팔았으며, 고급안경, 듀퐁 라이터 등 최고급 사치품을 아주 헐값으로 판매 하면서 큰 돈을 벌었다고 상인들은 자랑을 한다. 필자도 기념으로 알라딘 램프와 카펫을 구입해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란산 카펫을 이라크에서 600달러 정도 주고 사서 가지고 나오면 줄잡아 2000 달러 짜리가 된다. 중동에서는 어느 집에 들어설 때 깔려 있는 카펫을 보고 가세를 판단한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국경 세관에서 모두 압수한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값싸게 팔리고 있어 국부가 누수 된다는 논리다. 한번은 압수 창고를 볼 기회가 있어 들여다 보니 시장에서 보지 못한 최고급 카펫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아침을 먹고 석유성에서 할 말을 이리 저리 생각하며 서류를 들여다 보니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감이 잘 안 떠올랐다. 당시 북한은 대사관을 개관 해 놓고 있어 이북은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은 그래도 도로 건설, 세탁기, 냉장고 등으로 다소 알려져 있다고는 한다. 한 로타리에 녹슨 삼성 간판이 초라하게 걸려 있다. 코끼리 가죽소파에 일어나 창가를 내려다보니 풀장의 파란 물빛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풀장은 50m 길이에 8레인으로 국제규모이고, 그 옆에는 테니스장 3면이 있다. 야간 조명등까지 구비한 하드 코트다. 네덜란드인 M도 테니스를 좋아한다니 석유성에서 돌아와 저녁에 한 게임 치기로 했다. 호텔은 모든 시설은 잘 갖추어져 있으나 운영과 관리를 물자 부족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부모 잘못 만난 자식의 심정이랄까 하여튼 석유를 무진장 가지고 있어도 별 도움이 안 된다. 독재정치와 패권주의 전쟁 등 이를 빌미로 미국의 개입으로 이라크 국민은 허덕이고 있다.

이라크 석유성에서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석유성이 있다. 이 건물은 미국 침공 시에도 전혀 포격을 받지 않고 잘 보존됐는데, 이유는 이라크 유전 자료를 훼손시키지 않기 위한 미국 측의 조치였다고 한다. 건물에 도착하여 어수선한 로비 방문객 접수처에서 수속을 마치고 기다리니 덩치 큰 아랍여성이 안내를 한다. 우선 만날 사람은 실무 국장인 압둘아 티그리티 박사(Dr. Abdulah Tikriti)이다. 그는 영국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티 태생이다. 인상은 보기 좋으며, 지내보니 진실하고 상대방을 배려 할 줄 아는 사람이며 관료주의에 물든 사람이 아니다. 이라크 사람들은 중동의 어느 국가 보다 계약을 존중하며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는다. 더욱 놀란 것은 방에 TV가 놓여 있고 CNN을 청취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고위 공무원에게는 세계적인 뉴스를 보고 듣게 허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간단한 인사 후 방문 목적을 간단명료하게, 즉 유전확보를 위하여 귀국에 투자를 원한다고 하였다. 잠시 후 2~3명의 실무자를 참석시켜 정식회의가 시작됐다. 예상했던 대로 이들은 한국에 관하여 별로 아는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나라로 그것도 남북으로 갈려 있으며 특히 남한은 미국의 비호아래 북한과 대적 관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다. 마침 하와이에 있는 동서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아시아권의 석유수요예측을 기초로 준비한 자료를 설명하겠다고 제의하니 다른 회의실로 옮기면서 20여명이나 모였다. 동양에서 온 자그마한 강연자를 보더니 의아해 했다. 1990년대 초반에만 해도 일본을 제외하고 석유시장에 관하여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시아의 석유수요 5개년 장기 수요예측을 분석하면 그 증가율은 서방세계를 크게 웃돌았다. 특히 중국이 가장 높았으며, 인도가 그 뒤를 이었다. 그리고 한국도 일당 150만 배럴을 넘었으며 수요도 증가 일로에 있었다.

한국에 관하여는 두 가지 사실만을 강조했다. 하나는 연간 석유 수입이 150억 달러(1993년 기준)가 넘으며, 세계석유파동을 극복하기 위하여 조성된 석유기금이 수천억 원이 있으며, 이의 원천은 도입되는 원유 배럴 당 1달러 이상 부과하여 석유기금을 조성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유전개발을 위한 투자재원은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었고, 기술문제는 이라크 석유산업도 100여년이 넘게 추진돼 왔으니 상당한 기술과 경험이 축적 되었을 것이고 보다 고도의 기술은 외부 용역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양국의 협력은 우리는 석유가 필요하고 너희는 돈이 필요하니 문제는 양자간의 의견만 일치하면 일석이조라고 하면서 한국은 6·25의 전쟁 폐허로부터 단기간에 복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 중진국으로(당시 기준) 발전시킨 노하우를 이곳에도 알려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는 이라크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며 설명을 마쳤다. 설명의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으며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석유성은 처음에 라타위광구와 서부사막 탕사광구였다. 라타위는 이라크의 10대광구에 들지 않았으며 중질원유로서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탐사광구까지 끼어서 내 놓으니 받아 드릴 수가 없어 내일 다시 협의키로 하고 회의를 마쳤다. 어찌되었던 광구를 제시 하는 것으로 보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어 아민에게 보다 좋은 광구를 확보하라고 밀어 부쳤다. 그 광구는 규모도 작고 중질유로 한국 시장에 적합하지 않으며 적어도 5대 광구 중에 하나는 차지 해야겠다고 하였다. 다음날 협상에 들어가니 큰 광구는 한 회사에게 줄 수 없다고 하면서 큰 회사가 포함된 컨소시엄을 구성한다면 큰 광구를 주겠다고 하였다. 막연한 상태에서 컨소시엄을 구성 할 수 없으니 광구명이 포함된 석유성의 LOI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광구명은 알려 줄 수 있으나 LOI는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때 제시한 광구명은 할파야(Halfaya)였다. 이라크의 4대광구 중 하나이며 5개의 시추공을 뚫어 모두 석유를 발견했다. 이 유전은 오래 전에 브라질 국영석유 Petrobra와 이태리의 AGIP이 관여 했던 광구이다. 기 발견 석유광구로서 이만하면 수준급이라고 생각하고 LOI를 받아내는데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티그리티 박사가 뜻하지 않게 저녁을 초청했다. 몇몇 석유성 인사와 우리 일행이 저녁을 하면서 한국의 실정에 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물어 보면서 협조하겠으니 좋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적극 추진해 보라고 한다. LOI도 장관에게 보고 하였으니 기대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술을 마 실수 있었으나 일반 국민이 점점 먹고 살기 힘 들어 지자 금주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라크 바스라 원유를 한국에 필자가 최초로 도입했고 이로 인하여 국교도 수립되었으니 이제 한국이 광구개발에 참여 하여 유엔의 경제 제재를 풀고 국제사회에 다시 참여하는 데 적극 협력하겠다고 하였다.

당시 비상임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은 한국에서 맡고 있어 전혀 빈말이 아니었다. 석유성에서 첫 날은 나름대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그들의 대인관계, 한국에 대한 그들의 인식, 생활에 시달리는 고뇌, 그래도 잃지 않은 긍지와 굳건함 등을 볼 때 역시 수 천년 역사를 가진 민족임에는 틀림없다. 이곳에 와 보니 반만년 역사는 별로 길지 않게 느껴진다. 벌써 기원 전 수천년 전에 바빌로니아 문명이 있었으니 말이다.

다음날 석유성을 방문하니 티그리티 박사가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비록 조건부였지만 LOI를 주겠다고 한다. 그 조건이란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3개월 이내에 2차 협상을 하자는 것이다. 실은 이들도 돌파구를 찾으려고 힘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4대 광구의 하나인 할파야광구를 한국에 배려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 영국과 미국의 석유회사들은 유엔의 결의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 돼 이라크에서 어느 사업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둘째 한국은 손쉬운 상대로 여겼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을 향후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자 해서다. (이라크인은 왜 그런지 일본인을 싫어했다.)

여가를 즐기다

이곳은 목요일이 토요일이다. 금요일은 사원에 가서 예배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목요일 오후 호텔로 돌아와서 네덜란드 M과 테니스를 치기로 했다. 5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기온은 섭씨 40℃를 웃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습도가 낮기 때문에 그늘에만 들어서면 그리 더운 줄 모른다. 한두 게임을 하고 나니 땀이 온 몸에 무더기로 나온다. 물을 계속 마시면서 몇 게임을 더 치고 나니 온 몸이 하얗게 변한다. 아주 건조하기 때문에 땀은 즉시 증발하고 염분만 계속 남아 고운 소금이 온 몸을 감싸 버린다. 더치려고 했으나 소금으로 감싸인 팔다리를 보고는 그만 뒀다. 다음날은 휴일이라 M과 바빌론 유적지를 찾기로 했다.

바빌론 유적지는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85km 떨어진 곳에 있다. 바빌론은 기원전 3천년전에 작은 마을이 생겨나 기원전1894년에 구 바빌론 왕국이 세워졌고 그 후 앗시리아 지배하에 있다가 기원 전 620년경에 신 바빌론이 세워 졌다. 구 바빌론의 왕이었던 함무라비는 이 곳을 다스리려고 그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을 만들었다. 이 곳에서 영문판 함무라비법전을 한 권 사서 보관하고 있다. 당시 이 도시를 건설할 때 이미 역청을 사용해 도로를 포장 한 흔적을 지금도 찾아 볼 수 있다. 역청은 도로 포장뿐만 아니라 선박의 바닥에 칠해 방수를 하는데도 사용했다. 이는 땅속의 석유가 지각 변화로 지표로 나와 석유성분 중 휘발성인 것은 모두 증발하고 남은 것으로 오늘날의 아스팔트와 같은 것이다.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간단히 마치고 이곳의 별미를 맛보려고 티그리스강가 식당으로 향했다. 마즈구프라는 음식이다. 티그리스강에서 잡히는 잉어의 일종인 민물 생선이다. 요리 방법이 특이 하다. 생선의 등을 갈라 내장을 다 꺼내고 양쪽으로 펼쳐서 굽는다. 굽는 방법은 마당에 향이 나는 나무로 모닥불을 피워 놓고 그 주변에 쪼겐 생선을 버티어 놓고 복사열로 익힌다. 그런데 이 생선 가시 중에 Y자 모양이 있는데 잘 골라 먹어야지 이 가시를 삼키게 되면 좀처럼 빼내기 힘들다. 우리 요리사는 아주 유명한 쉐프다. 훗세인이 불란서 방문 시 (시라크대통령이 외무부 장관시절) 데리고 가서 이 생선요리를 자랑했다고 한다.

다음 날은 대학 교수와 카펫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시장 입구에 들어 서니 한 무리의 이라크인들이 나를 보더니 킬킬 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못들은 척 지나가서 교수에게 사유를 물은 즉 그들이 필자가 중국인으로 알고 웃었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중국인은 이름을 지을 때 쟁반에 동전을 몇 개 올려 놓고 키질을 하면서 나는 소리를 따서 부른다고 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그들 귀에는 중국어가 동전이 쩔렁 거리는 소리로 들리는 모양이다. 카펫 시장에 들어 서니 양쪽으로 가게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한 가게에 들어 가니 주인이 십년지기 인양 맞이 한다. 우선 농담으로 ‘날아 다니는 양탄자’를 구할 수 있느냐 하니 있기는 있는데 소용이 없다고 하며 그 이유는 비행금지 구역이 설정돼 날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여 개 이상 살펴보고 하나를 골랐다. 카펫 값은 주식 값과 비슷하다고 한다. 매일 가격이 변동하며 오전 오후가 다르다고 한다. 돌아 오는 길에 미로 같은 시장 골목길을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교수가 일러 준다. 이곳에서는 들치기가 물건을 빼앗아 순식간에 골목으로 사라 지면 그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도둑을 이라크에서는 알리바바라고 부르는데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연유됐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자리에 드니 돌아 길은 아득히 느껴지고, 컨소시엄 구성은 마음에 큰 부담을 준다.

* 상기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CEO ENERGY>2013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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