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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석유는 어디로 흘러가나(VII)

이라크 석유는 어디로 흘러가나(VII)

  • 기자명 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 입력 2013.06.1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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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방식의 광구개발계약

1999년 1월 이라크 석유성은 상부 지시를 받아 협의하던 PSC(생산물분배계약)를 전면 중단하였다.

석유성은 현행법상 외국인은 원유지분을 소유 할 수 없다는 법적 근거를 내 세워 PSC 계약방식을 추진해왔다. 이를 통해 국제석유회사를 대거 참여시켜 유엔 경제제재를 풀어 보고자 하는 속셈이었다. 소련, 중국과 PSC 계약을 체결하고 다른 나라와도 이 방식을 추진했지만, 허사였다. 미국이 이에 반대하는 강경한 태도를 추해 계약을 추진한 나라들이 선뜻 유엔 결의를 위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태를 파악한 이라크 정부는 새로운 계약방식을 추진했다. 원유지분의 현물 소유권이 아니라 매입권(Buy-Back)을 주는 방식이었지만, 이란에서는 이미 사용하는 계약방식이었다.

우리와의 계약서 초안은 1년 후인 2000년 1월에 작성되어 정부 고위층의 승낙을 받았으나 아직 줄 수 없다고 했다. 최종안을 차기 회담 때 주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직 최종안이 확정되지 않은 듯 했다. 그리고 비공식 회의를 통해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ONGC(인도 국영석유)와 PERTAMINA(인도네시아 국영석유), PETROVIETNAM(베트남 국영석유) 등에게도 새로운 계약 방식에 대한 설명을 했다. 이어 각자의 자체 안을 작성,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이에 반해, 우리에게는 계약을 간단히 설명하고 경제성 검토에 필요한 사항 등을 알려주면서, 이번에는 선두 주자로 뛰지 말고 준비만 하고 있으면 자신들이 제안서 제출 적기를 알려 줄 테니 그때 제출하면 될 것이라고 언질을 주었다. 지난번에는 한국컨소시엄이 선두주자로 제출한 안이 노출되어 불리하게 작용했다. 미국이 이라크 원유 증산을 희망하고 있어 외국인 투자를 부분적으로 허락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으니 새로운 계약방식에 맞도록 모든 준비를 서두르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제안한 새로운 계약조건은 계약기간 12년, 운영권은 7~8년 후 이라크에 인계하는 방식이었다. 운영권 인계 후에는 기술협력계약을 체결키로 했다. 지분율은 우리 90%에 이라크 정부 10%의 조건이었다. 원유 확보방안은 비용회수를 위한 원유와 광구에서 생산하는 원유의 25%를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라크 측의 평가기준은 생산율, 투자비 및 보수비율 등이며, 이와 같은 광구계약도 종전에 거론되었던 10개 광구에 한해 적용한다고 밝혔다. 더욱이 한국 컨소시엄의 입지는 종전과 같이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또 이라크 석유성은 유엔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기존 유전의 개보수를 실시할 계획인데 한국 업체도 참여 해주기를 바란다고 전해왔다. 공사내역은 정유공장 보수, 송유관, 시추설비 등이다. 중국과 소련보다 우리나라를 선호한다면서 상세한 내용이 담긴 자료를 주면서 말하기를, 이번 새로운 계약도 빠른 시일 내 준비하였다가 경제 제재가 풀리는 즉시 체결 할 수 있도록 양측에서 준비를 잘하자고 하였다.

2000년 4월 18일부터 20일까지 비공식 및 공식회의를 수 차례에 걸쳐 실시하고 쌍방간에 할파야 광구협의를 새로운 계약조건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기로 확정하였다.

※당시 회의록의 주요골자(2004년 4월 20일 바그다드)
-한국 컨소시엄 측은 이라크 측에 동남아시아 모든 국가들이 경제 위기에 처하였다. 그러나 한국은 적절한 대처 방안을 취하여 빠른 시일 내 잘 극복하였다.고 간단히 설명하였다.
-이라크 측은 서로간에 협상하던 개발생산계약의 방식을 변경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이 변경의 목적은 양측이 명확한 구분 하에 계약을 안정적이고 용이 하게 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한국측은 컨소시엄 회원사와 검토할 것이며, 새롭게 요구되는 사항을 확인하여 해당되는 계약상의 의무조항을 수정하고, 이 수정 계약서 안을 적기에 석유성이 검토할 수 있도록 제출 할 것이다.
-이라크 측은 이라크와 유엔간의 석유산업에 필요한 부속품의 공급 절차를 설명하고, 이와 관련하여 한국이 참여하도록 초청하였다.

한국에 돌아와 컨소시엄회의를 소집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하였다. 각사의 의견은 다소 차이가 있었으나 분명한 것은 이라크 할파야 광구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국영기업체인 한국석유공사는 우선 원유확보가 가능하여 찬성하였고, 삼성은 연관된 거래에 관심이 컸다. SK는 이라크 바스라 원유를 사용하고 있어 이라크와 유대를 강화하려고 했다. 간사를 맡고 있던 HI&T는 어떠한 계약 형태로든 성사시키는 것이 목표였다.

이 새로운 계약은 경제성만 문제가 아니라 무려 16개 조문을 수정해야만 했다. 이라크 측은 PSC계약에서 양보했던 내용도 다시 원래대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입맛대로 조문을 변경하고 추가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전에 약속했던 1억 달러 식량 차관은 철회하기로 했다. 생산 원유의 25%까지 구입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는 하나 직접적인 원유 확보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즉, 원유 지분이 없기 때문에 서명 보너스격인 식량 원조를 해줄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몇 년에 걸쳐 수십 차례 바그다드를 방문하면서 겨우 합의된 PSC가 하루 아침에 허사가 되어 이제 다시 시작하자니 적지 아니 힘든 시점이었다.

할파야 광구의 경제성은 여러 가지 관련 요인에 따라 좌우되지만 석유성과 새로운 조건하에서 보수 지수를 합리적으로 정해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경제성에 영향을 주는 요인
-유가: 가정이지 결정할 수 있는 요인이 아니며 경제성에 상당한 영향을 주지만 상대적으로 민감도는 그리 크다고 볼 수 없다. 앞선 PSC 경우와 같이 유가 수준을 계약조건으로 논의 할 수는 없다. 자체 역량으로 판단하여 경제성을 계상해야 한다. 그러나 가급적 이라크의 예상에 접근해야 한다.
-비용회수: 계약기간이 12년으로 짧고 투자비회수와 보수비의 산정기간인 운영권 양도기간이 금방 도래(7년)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투자비회수는 빠를수록 좋다.
-비용회수한도 50%를 늘릴 수 없다면 운영권 인도기간을 늦추는 것도 대안이지만 이것도 쉽지 않을 경우 비용회수와 보수비 산정의 종료기한을 별도로 정해 운영권 인도 기간보다 늦추어 잡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개발비 증감이 경제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적음.(10%변동에 내부수익율은 0.5%이하)
-서명보너스는 고려치 않음.
* 내부수익율(Internal Rate of Return, IRR) 17%를 목표로 하여 보수지수(‘r’ index)를 산출하여 이라크 측과 협상하기로 한국 컨소시엄이 합의하였다.
-투자비회수한도(Cost Recovery Cap): 50%(고정)
-보수비한도(Remuneration Cap): 10%(고정)
-보수비지수(‘r’ Renunciation Index): 0.375(변동치로 협상대상)

할파야 광구의 마지막협상

이라크 10대 발견 광구에 관한 협상은 1991년 프랑스 석유회사가 처음으로 협의하기 시작했으며, 이듬해인 1992년부터는 수많은 외국회사가 협상에 참여하였다. 이라크의 시도는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했다. 국제 석유회사가 큰 관심을 가지고 광구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경제제재를 풀어보려는 의도와 또 하나는 외국 투자자본을 대대적으로 유도하여 장기 목표인 일산 600만 배럴의 생산을 달성 하려는 것이었다. 특히 미국 석유회사의 참여를 고대했다. 실제로 몇몇 미국 회사들이 수면 아래에서 작업을 하다가 초기에 그만 두었다. 이 물결에 우리나라는 1994년 발을 들어 놓았다. 시기적으로 보아 이른 것도 늦은 것도 아닌 적당한 타이밍이었다.

원래 이라크 정부는 할파야 광구를 개발하려고 이탈리아 AGIP SPA(2003년 ENI가 흡수합병)에게 용역을 주어 모든 조사를 마치고 석유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란과의 8년 전쟁으로 할파야 광구의 개발은 중단되었다.

이후 1994년 우리나라가, 1995년 호주(BHP)가, 1996년 중국(CNPC,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이 할파야 광구 개발에 참여했다. 호주는 다량으로 생산되는 자국산 밀을 가지고, 중국은 정치적 및 경제적 이점을 가지고 덤벼들어 잘 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호주의 BHP는 내부 경영상의 문제가 있어 주춤하였고 중국은 먼저 계약한 광구의 계약 불이행으로 할파야 광구 협상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나라에게는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개발사업에 틈새를 비집고 들어서려는 찰라 이라크는 새로운 계약을 들고 나왔다.

이라크 석유성의 적정 투자비는 15억5000만 달러이었다. 한국 컨소시엄의 수치가 대부분 높은 이유는 자체 평가능력이 한정적이라 외부용역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형광구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목표층의 분석도 간과하고 있었다. 참고로 중국이 2010년 할파야 광구 낙찰을 받을 때 배럴당 투자비가 1.50달러이었으니 13년 전의 한국 컨소시엄의 배럴당 1.35달러는 상당히 높은 숫자다.

이처럼 우리나라에게는 아주 불리한 입장이었다. 그대로 진행이 되었더라면 아마 입찰에서 제외되었을 것이다. 다행이 이라크 정부 내 우리에게 호의적인 한 고위층이 이러한 사실을 미리 알려주어 대책을 마련해 새로운 계약조건으로 경쟁적 위치에서 다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BHP와 CNPC도 이미 사업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


어느 정도 계약조건이 마무리 되었고 서명단계에 이르면 재숙고하여 결정하기로 하고 작성된 안을 석유성에 제출 하였다. 이에 석유성은 그간의 노력을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우리나라를 선호해서인지 몇 가지 충고를 해주었다.

추가로 새롭게 타당성 검토를 하지 말고 계약 전 단계이니까 1995년에 기 검토한 내용을 가지고 필요한 자료를 끌어내면 충분할 것이라고 말해줬다. 또 안정적인 생산 수준은 일산 22만5000배럴이니 이 수준은 차후 운영권을 인수받을 이라크 석유회사(SOC: South Oil Company)도 선호하는 수치이니 계속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개발단계의 소요기간은 소규모 광구 5년, 중간크기 광구는 6~7년으로 보고 있다. 할파야 광구 같은 초대형 광구에 대해 이런 계약을 한 적은 없지만, 제안한 7년은 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값싸게 생산 할 수 있는 1120억 배럴의 가채매장량을 계속 놓아 둘 수는 없을 것이며 유엔 경제 제재는 부분 또는 전부 머지않아 해제 될 것을 염두에 두고 계약 전 단계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즉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었다가 때가 되면 즉시 서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2001년 4월 25일 새로운 계약에 따라 모든 조건을 수정 보완하여 석유성과 협의하려고 간사 회사 HI&T 홀로 바그다드로 출발했다. 이라크 석유성과 16개 조문을 축조심의하고 마지막에 경제성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물었다. 석유성 실무 팀이나 우리 실무 관계자 모두 지쳐있기는 매한가지였다. 해가 갈 수록 이곳의 생활은 핍박해지고 살아날 길은 언제나 가능성만 지니고 있지 실현되지 않고 있으니 난감할 뿐이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은닉해두고 있다고 믿고 있으나 이곳의 식자들과 고위 관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여러 번 말하는 것을 들었다.

석유성 실무자들과의 회의를 마치고 2001년 8월에 회의를 갖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이번 4월 회의가 후세인 정권과의 마지막 회의가 될 줄은 당시 아무도 몰랐다. 지난 7년간의 협상도 물거품이 되었다.

귀국하여 컨소시엄회의를 소집하고 차후 대책을 논의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SK, 삼성, 석유공사의 대표들이 모두 경질됐다. 필자도 2001년 10월에 HI&T를 사임했다. 초창기 참여자들이 모두 사라지니 할파야 광구 사업은 어디로 갈 것인지, 기로에 서게 되었다. 약속한 2001년 8월이 되어도 어느 누구도 바그다드를 찾지 않았고 2002년은 그냥 지나가 버렸다.

2003년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유엔의 결의 없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후세인 정권을 무참히 붕괴시켰다. 유엔 결의를 배재한 이유는 중국과 소련이 안보리에서 반대할 것이 분명 했기 때문이었다. 날조된 허위정보인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된 미국의 침공은 이스라엘 정책에 동조하고 미국의 패권주의를 중동에서 실현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막대한 전비와 종교 분파주의 갈등, 석유법의 난맥상 등 끝없는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라크 국민은 사회적 갈등과 생활고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석유공사의 헛된 노력

우리나라 정부는 미국의 침공에 동조하여 파병을 하였다. 등 떠밀리듯 파병을 하다보니 아무런 실리도 챙기지 못 하였다. 이왕 파병을 할 것이었으면 먼저 협상테이블에 나서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 냈어야 했다.

전후에 할파야 광구는 갈 길을 잃어 버렸다. 석유공사는 9년간의 협상으로 얻어진 기득권과 경험을 살리기는 커녕 또 다른 이라크 컨소시엄을 구성, 광구 개발사업은 분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할파야 광구를 제외한 여타 광구를 개발하겠다는 목적으로 컨소시엄을 만들었는데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유는 이제 와서 새로운 광구를 시작한다는 것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 당시 모 국회의원이 이라크 석유성 장관과 면담하는 장면이 TV에 나왔다. 마치 이라크에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 만나는 것 같이 보였으나, 실은 영국 런던에서 만난 것이었다. 새 컨소시엄의 간사 회사인 범아자원은 2004년 2월에 설립된 자원개발 업체이다. 이들이 이라크 전후 건설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영국계 회사인 AMEC에 연줄이 있어 이라크 광구 참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 새로운 컨소시엄의 구성 회원은 석유공사, SK, 대성산업 및 범아자원이다. 석유공사는 한술 더 떠서 할파야 광구 컨소시엄 회원사에게 지분의 5%씩(석유공사는 제외)을 떼어 범아자원에게 무료로 양도토록 하여 사업에 참여시켰다. 또 범아자원을 간사 회사로 추진하여 이를 반대할 경우 할파야 광구 컨소시엄을 해체하자고 제의하였다. 하지만, 할파야 광구 컨소시엄은 4개사의 동의 없이는 일방적으로 해체가 불가능하다. 이는 석유공사의 새로운 실무자들이 컨소시엄 회사간에 합의된 계약조건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간 할파야 광구를 통해 이라크 석유성(특히 기술진)과의 협상·협의 노하우를 축적했으며, BHP, CNPC 등의 경쟁국의 계약조건, 경제성검토 및 기술자료도 확보한 상황이었다. 할파야 광구에 대한 검층자료, 시추자료 등의 제반 기술자료도 갖고 있었으며, 그간의 활동을 통해 석유성 기술진을 비롯한 인적 네트워크도 어느 정도 구축했었다. 더욱이 석유성 내에서 한국 컨소시엄의 기반이 구축돼 있었다는 점은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었다. 비용도 인건비, 사무실 운영비, 출장비, 외기술용역비, 의약품 지원 등으로 약 43억 원이 투자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이 같은 성과와 정성, 투자비 등을 도외시하고 확실치 않은 줄을 잡아보겠다고 나서는 중대한 착오를 범했다. 한마디로 10년간 쌓아 올린 공든탑을 막연한 생각으로 한 순간에 무너트리자는 것이었다.

1994년 석유공사 기술진은 할파야 광구 시작부터 그런 대형광구가 어디 있겠느냐며 황당무계하다는 입장을 보여왔지만, 두 번에 걸친 타당성 검토로 잘못된 것을 알아 차렸다.

석유공사는 10여년이 지나 새로운 컨소시엄을 구성했지만, 큰 진전은 없자 두 개의 컨소시엄을 하나로 합병하여 하나로 하자는 것이다. 즉, 할파야 광구 컨소시엄을 없애야 된다는 것이다. 북망산에 가보면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한다. 필자는 합병의 전말을 가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고 싶다.

글: 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계충무 고문은 서울대 경제학을 전공했고 한국전력, 대한석유공사(현 SK), 동아건설 등을 거쳐 한국석유공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한얼상사와 코람자원의 대표이사 활동으로 국제 자원개발 사업에 남다른 성과를 내기도 했으며 현재 HI&T 사장으로 취임해 이라크 할파야 유전개발 사업을 협상중이다.

*상기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CEO ENERGY>2013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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