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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석유는 어디로 흐르나(최종회)

이라크 석유는 어디로 흐르나(최종회)

  • 기자명 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 입력 2013.07.0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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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 도약의 기회를 날리다

현재 한국석유공사는 1979년 발족 당시 회사명은 ‘한국석유개발공사’였다. 1970년대 말 두 번에 걸친 세계석유위기에 혼비백산한 우리 정부는 총리, 장관, 특사를 중동에 급파 했다. 그러나 손에 얻은 것은 없었으며, 우호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말만 듣고 왔다. 정부는 소 잃고 외양간고치는 심정으로 한국석유개발공사를 발족시켰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작명부터 세련되지 못했다고 본다. 석유공사로 개명하기 전에 해외 나가 명함을 내놓으면 석유개발에 필요한 땅을 확보하는 부동산 전문회사쯤으로 알기 일쑤였다. 이름을 고쳐보려고 주무부처에 KOC(KOREAN OIL COPORATION)를 추천하니, 우리나라 한국올림픽위원회(KOC)와 KUWEIT OIL COMPANY(KOC)와 같다고 퇴짜를 맞고 그만 뒀다. 그러다가 수년 뒤에 한국석유공사(KOREA NATIONAL OIL CORPORATION, KNOC)로 회사명이 바뀌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으면서 석유가 생산되는 국영석유회사 행세를 하고 있다.

사람은 작명을 잘해야 출세도 하고 죽어서도 가죽이 아니라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회사도 그렇지 않은가 싶다. 이라크에서 초대형 광구를 잘만 획득하였다면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겠지만 전혀 그런 가능성이 없다. 큰 물에서 놀아야 큰 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지 않겠는가. 남이 잡아놓은 물고기나 돈을 주고 사는 꼴이 정녕 낚시꾼이라고 할 수 있나.

석유공사의 임무는 국내에 안정적이며 경제적인 석유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는 하나 돈이 많이 드는 석유 비축이 하나이다.
다음은 석유 광구를 개발하여 석유를 생산 하는 것이다. 기술과 자본이 있어야 하고 위험부담의 감수(Risk Taking)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해외 석유회사를 매입 할 수도 있으나 이 또한 면밀한 검토와 수익성을 장기적인 안목에서 따져보아야 한다. 끝으로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국내 석유·가스 자원개발이다. 공사설립 초기에는 기술, 자본, 경험 등이 부족하고 위험부담이 커서 석유개발 사업 추진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다.

초창기 석유공사는 천연가스사업(한국가스공사), 송유관사업(대한송유관공사) 등을 모두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사장, 임원, 고위 간부 등이 대부분 전문직이 아니거나 경험이 전무하다 보니 그 좋은 기회를 마다하고 외면해 버렸다.

한 예를 든다면 가스 사업이다. 당시 동력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주관으로 국내 가스도입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필자도 실무 위원으로 그 타당성 검토에 참여하였다. 일반수요만으로는 경제성이 없어 발전소 수요를 포함시켜 도입의 타당성을 겨우 맞추어 도입하기로 확정 지었다. 청정에너지인 천연가스를 발전소 연료로 쓴다는 데는 문제가 있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용했던 것이다.

그 주체를 석유공사로 하기로 하였으나 공사의 임원진은 적극 반대 하였다. 그리고 반대이유 또한 애매모호 하였다. 사람이 부족하고 고압이기 때문에 폭발의 위험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간 수집 분석한 상당한 천연가스 자료를 가스공사 추진 위원에게 넘겨주고 그만 두었다.

필요한 인력은 충원하면 되고 폭발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 않으려는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은행과 거래하는 수천억 원의 석유기금운용보다는 힘들고 위험성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공사의 앞날을 조금이나마 생각했다면 땅을 칠 노릇이다.

송유관 공사도 그렇다. 석유공사는 송유관 공사설립을 놓고 정유회사와 경영권, 즉 주도권싸움이 심각했다. 당시 동자부는 정유회사 편이었고, 석유공사는 외롭게 석유기금융자를 등에 업고 고군분투하다가 결국 한국송유관공사를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대한송유관공사에 합병됐다.

석유공사는 정부의 과도한 간섭과 제한된 자본, 부족한 기술, 국제적인 경험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이제야 가야 할 길로 접어든 듯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석유공사를 위협하는 어려움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민간기업을 리드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석유에너지 확보에 위험 부담을 감수(Risk Taking) 해야 하는데, 오히려 안전하게 가려다 더 큰 위험에 노출되어 힘겨운 처지가 되여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공사는 결과만 놓고 장족의 발전이 있다고 홍보하는데 그 과정에 있어서 크나 큰 시행착오를 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 석유개발사업 추진 결과는 석유공사에게 큰 경험이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석유공사의 뜬금없는 제안

2003년 3월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여 후세인 정권을 무너트렸다. 이라크 내에는 연합정부가 수립됐다. 불안한 치안에도 불구하고 석유개발에 참여하고자 하는 국제 석유회사는 테러안전요원을 고용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이라크 재건사업에 진출하였다. 긴급 복구에는 미국과 영국계 회사들이 진출하여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회사가 미국의 헬리버튼社과 영국의 훌로아 아멕(FLOUR AMEC)社이다. 영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정보를 미국에 제공한 공로로, 미국은 유엔의 결의 없이 이라크를 침공한 댓가로 챙긴 것이다. 우리나라도 엄연히 파병을 했음에도 챙긴 이권은 전무하다. 되려 국내에서는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만 요란스러웠다.

이때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석유공사는 전후 이라크 석유개발사업 추진이 잘 안 되는 사유는 할파야 유전 컨소시엄 간사회사가 활동을 하지 않아 정체되었다고 했다. 할파야 유전개발 컨소시엄은 4개사가 공동으로 같은 비용 같은 노력을 들여서 사업을 추진하는 그룹인데 석유공사가 유전개발을 위하여 건전한 제안을 하여 표결에 부쳐(4개사 중 3개사 찬성으로 안을 확정) 추진하면 되는데 추진이 안 되는 이유를 간사회사 때문이라는 것은 백보를 양보해도 옳다고 할 수 없다. 간사회사는 대 이라크정부에 컨소시엄을 대표하여 합의된 내용을 협의하는 것이지 확정된 안이 없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석유공사는 할파야 광구를 제외한 여타 광구를 개발할 목적으로 또 다른 이라크 광구 개발을 위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2004년 2월 설립된 범아자원을 간사회사로 정해 놓고 할파야 컨소시엄 간사회사에게 두 컨소시엄을 합병하겠으니 참여 하라는 것이다. 제1안이 합병 참여이고, 제2안은 그렇지 않을 경우 기존 할파야 컨소시엄을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회원사인 SK와 삼성은 석유공사와의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라 ‘갑’인 석유공사의 요구에 반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간사회사는 ‘갑’도 ‘을’도 아닌 아주 객관적인 ‘병’(丙)의 입장을 견지 할 수 있었다.

북망산에 가보면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 이제 막 발족된 범아자원은 영국계 회사인 훌로아 아멕社에 연줄이 있어 할파야 광구를 획득하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즉, 범아자원을 등에 업고 AMEC社를 미들맨으로 쓰겠다는 발상이다. AMEC社가 이 분야는 베테랑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2가지 오류가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9년간 이라크 정부와 접촉을 하였기 때문에 직접 석유성에 협상을 제의 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간사회사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말은 광구 브로커를 데려오지 않았다는 뜻인가?

이런 큰 광구는 처음부터 뒷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실무적으로는 이라크 석유성의 담당부서와 정식으로 협상을 하면서 애로사항을 비공식 루트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리고 AMEC社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설사 할 수 있어서 성사시켰다면 얼마를 떼어 주어야 하나? 그리고 주고 나면 과연 우리나라에 남는게 있었겠는가?

당시 석유성 장관도 우리나라 할파야 컨소시엄을 잘 알고 있으며 재정적, 기술적 등을 기준으로 광구를 분양한다는 서신을 보내왔다. 아래의 이라크 석유성 장관의 회신은 간사회사가 할파야 광구에 관련하여 직접 장관에게 보낸 서신의 답장이다.

석유공사 논지는 이러하다. 범아자원 이사 중 1인이 AMEC社의 한국 지사장을 겸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AMEC社가 이라크 석유 사업추진에 필요한 양해각서 체결을 도와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여타의 이라크 석유개발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범아자원을 영입하면 할파야 광구에 대한 참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아직까지 범아자원이 이라크에서 어느 광구를 획득했다는 기사를 접하지 못했다. AMEC社가 이라크 내 건설 공사건을 따내 준다면 어느 정도 믿을 수 있겠지만, 석유 광구 사업권을 따내준다는 말을 믿기는 어렵다.

혹여, AMEC社가 우리나라 할파야 컨소시엄의 이라크 석유성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감별하기 위해 참여했을 수도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라크에는 할파야 광구보다 좋은 광구가 허다 한데 왜 구태여 컨소시엄 합병을 추진했는지는 의문점이다. 더욱이 의심이 가는 것은 석유성 장관이 간사회사에게 보낸 서신도 AMEC社가 선처 해주었다고 석유공사가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활성화 방안에 난색을 표한 석유공사

기존 할파야 간사회사(HI&T)는 이라크 정치상황을 분석하고 과거 이라크 석유성과의 유대 관계를 앞세워 인력을 보강하여 조속한 시일 내(2005. 6) 석유성을 방문할 계획을 수립하고 기본 전략을 수립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계속해서 컨소시엄 합병만이 살 길이라고 끝까지 주장하며 응하지 않았다. 삼성은 석유공사의 판단에 따르겠다고 하였으나, SK는 합병하지 말고 이전과 동일하게 할파야 사업을 추진하자고 해서 반반으로 갈렸다.

이에 석유공사는 간사회사를 이전보다 한 단계 높여서 압박하였다. 기존의 컨소시엄으로는 목적달성이 불가능하므로 범아자원을 영입하여 컨소시엄을 재편하자는 것이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간사회사와의 할파야 컨소시엄 계약을 종료하고 각사가 개별적으로 추진한다는 안을 내놨다. 도대체 범아자원은 AMEC社 말고 무슨 능력이 있기에 석유공사를 통하여 이렇게 강력하게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범아자원의 참여조건은 아래 표와 같다.

지난 9년간 석유성과 협상을 심도 있게 추진하였고 실무책임자의 이니셜을 마쳤으며, 석유성 장관은 물론 석유성 기술자들과 담당자들은 모두 한국 할파야 컨소시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탐사자료, 검층자료, 지질자료 등의 많은 자료를 이미 가지고 있는데 연고권이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자는 것에 어떤 의도가 깔려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이라크 정권이 바뀌었어도 연고권을 어느 정도 주장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호주, 중국 등 경쟁국가의 할파야 전략과 경쟁자료를 상세하게 알고 있는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왜 석유공사는 범아자원과 AMEC社를 통하지 않고 직접 석유성과 접촉하자는 제안을 거부한 것일까? 법아자원에 무조건 15% 지분을 주겠다는 명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범아자원에게 이 같은 지분을 무조건 주겠다는 명분이 석연치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범아자원의 이사 중 한명이 AMES社 지사장이라는 사실 때문이라는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점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석유공사는 간사회사가 응하지 아니하자 기존 할파야 컨소시엄을 해체하기로 가닥을 잡고 명분 찾기에 돌입했다. 그들은 간사회사가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국영석유회사, 삼성, SK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4개 회원사 중 3개 회원사는 얼마든지 추진 안을 수립 의결하여 간사회사로 하여금 앞장서 추진케 할 수 있다. 과거 9년간 그렇게 추진하였고 어느 정도 결실을 봤는데 이제 와서 갓 생겨난 범아자원을 영입해야만 컨소시엄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이러한 와중에도 석유공사는 이라크 석유성 고위인사를 초청했다. 할파야 컨소시엄도 2500만원의 비용을 부담하라고 협조를 요청해왔다. 초청 목적은 MOU를 체결하기 위해서라고 만 했지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필자도 직접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초청 인사도 현직 차관도 아닌 석유성의 자문관에 불과했다.

이에 간사회사는 초청에 대한 사전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초청했으며, ‘국내 공동조사 합의서’(한국 할파야 컨소시엄 계약서) 제5조 3항에 따라 운영위원회에서 의결하여 분담을 결정토록 되어 있음을 통보했다. 비용 분담을 거부 한 것이 아니라 절차를 밟아 요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 것이다. 범아자원을 영입하든지 불응하면 할파야 컨소시엄을 해체하겠다고 하는 것은 절차를 무시한 비용부담 요청은 요즘 한참 거론되는 소위 ‘갑’의 처사가 아닌가 싶다.

간사회사는 두 컨소시엄을 합병하자는 석유공사 의견을 공식석상에서 이 같이 밝혔다. 첫째, 실효성이 없다. 왜 석유성과 직접 협상할 수 있는데 범아자원을 통하여 AMEC社를 중간에 두려고 하는가? 둘째, 합리적이지 못하다. 필요에 의하여 기존의 할파야 컨소시엄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또 다른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할파야 광구를 제외한 여타 광구를 획득하면 될 일인데 합병을 하자니 무슨 의도 인지 알 수가 없었다. 셋째, 현실성이 없다. 100여 년의 석유역사를 가진 이라크가 AMEC社의 손에 놀아나는 시대는 지났다. 1900년대나 가능하였던 일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석유공사는 정히 합병을 하겠다면 최소한 그럴듯한 명분이라도 내세우던지, 아니면 그럴 듯한 핑계라도 내놨어야 하였다.

2005년 석유공사는 이라크 석유성과 기술지원 MOU를 체결하고 KOICA의 지원금 500만 달러를 들여 석유성 산하기관 종사자 172명을 대상으로 10회에 걸쳐 KOICA 교육원에서 초청 연수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비록 소규모 광구지만 5개 광구를 검토하라고 통보받고 막 시작하려는 시점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석유공사와 이라크컨소시엄이 KRG(쿠르드지방자치정부)와 체결한 광구계약을 중앙정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단 통보를 받은 것이다.

즉, 석유공사가 중앙정부의 정책 노선을 분명하게 파악했어야 했는데 이를 간과했기 때문에 결국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것이다.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원조인 KOICA 자금을 활용해 득은 없고 손실만 보게 된 것이다. 이 초청교육도 AMEC社가 막후에서 힘을 써서 성사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석유공사는 왜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는지, 사전에 파악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AMEC社는 알고도 전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쿠르드 지방정부와 계약을 체결했으면 중앙정부에 보고만 하면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았을 것인데 그 이면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다. 석유공사에 누차 이 부분에 대한 공개를 요청하였지만, 밝혀지지 않았다.

2009년 2월 한-이라크 양국 정상은 MOU를 체결하고 이라크의 에너지자원 지원과 우리나라의 경제지원을 교환 하자는 포괄적인 양해각서를 교환하였다. 한마디로 서로 가진 것을 가지고 잘해보자는 구체성이 없는 계약에 불과하다.

마지막 시도

할파야 개발권 획득의 마지막 시도는 석유공사 내 인사이동이 이뤄진 때쯤 시작됐다. 석유공사는 교착상태에 빠진 컨소시엄을 재편하고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제안을 해 왔다. 바로 범아자원을 컨소시엄에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컨소시엄 회원사의 반대라고 설명했다.

그간 설왕설래 하던 범아자원 참여 또는 컨소시엄 합병은 일단락됐다. 다만 아쉬운 점은 4~5년간 허송세월로 보냈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을까? 석유개발 현장은 냉혹하며 실리주의인데 3류 정치판도 아니고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자문해 본다. 어쨌든 석유공사 의도대로 컨소시엄은 재편되었으며, 대표권도 석유공사에게 넘어갔다.

석유공사의 주관 하에 시도하려는 방법은 AMEC社도 아니고 MOU, JSC(Joint Steering Committee)도 아니다. 이라크 정부, 여러 종파 및 부족, 군부 등과 두루 통한다는 시리아인 출신인 무기상 MM을 고용해 이라크 석유성으로 하여금 한국 컨소시엄을 초대하도록 한다는 방법이다.



표면적으로는 주한 바그다드 대사를 통하여 정부대 정부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MM의 접근방법은 이러하다. 할파야는 이라크 남쪽에 위치하여 치안이 불안한 상태에 있으니 종교지도자 시아파인 하키과 시스타니와 최대 영향력 부족인 슘마르 등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들과의 관계를 활용하자는 것이다.

커미션은 공개입찰의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으나 입찰금액의 7%를 현금으로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 측은 석유개발 투자 후 3~4년이 지나야 현금 흐름이 생기니 지분으로 7% 주고 이에 대한 비용부담은 수익이 생길 때까지 지원해 주고 후에 받는 생각이었다. 대안을 제시하고 만약 현금이 시급하다면 소유 지분 7% 중 일부를 판매하여 현금화 시킬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당시로써 MM의 접근 방법이 타당하고 대가 지불이 계약 후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계약을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석유공사는 MM측과 1차 접촉한 결과 우리 측 제의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라크 석유법이 곧 입법화 될 것이며, 입법화 후 MM이 추진계획을 작성하여 제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MM측이 이라크 측 유력 인사와 사전협의 결과 할파야 광구 낙찰 성공 시부터 원유생산까지 3~4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계약 후 선금 1억 달러 지급 요청을 하였으니 우리 측에서 절반인 5000만 달러를 부담하면 향후 MM이 자기 지분 이익에서 상환하겠다고 제의 하였다. 일견하여 그럴듯하나 문제는 1억 달러의 진위와 잘못됐을 경우 5000만 달러는 회수 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럴 경우 MM도 같은 금액 5000만 달러를 물렸다고 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일들이 허사였을 것이라는 생각뿐이다. 그리고 ‘낭떨어지에서 떨어지면 자신의 손목이라도 잡어 본다’라는 몽고 속담이 절로 떠오른다.

그 후 계약을 체결하고 몇번 오갔으나 사업 진척의 큰 장애물은 이라크 중앙정부의 눈 밖에 나 블랙리스트에 석유공사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MM도 이것만은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고 했다. 결국 쿠르드와 계약을 체결하고 중앙정부에 신고를 하면 되는데 중안정부가 반대 할 것이 자명하여 간과 했던 잘못이 고스란히 10년 공든 탑을 흔적도 없이 무너트렸다. 그리고 석유공사의 고위직이 하는 말이 처참하도록 애교스럽다. “한 마디로 재수가 없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석유공사는 운영회의를 열고 할파야 컨소시엄을 해체하자고 안건을 상정하였다. 필자는 운영위원회 절차에 따라 해체하면 되는 데 입찰자 명단에서 왜 석유공사는 누락되었으며, 대안을 제시하라고 하였으나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했다. 다만 수차례 해체에 동의하라는 수차례 전화만 왔다. 아직도 할파야 컨소시엄은 해체 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4개사가 만장일치가 아니면 중도 해체 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할파야 광구는 이제 중국의 손에 넘어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우리나라가 참여 했어도 중국이 저가로 입찰을 했기 때문에 낙찰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공사 스스로 위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필자가 십 수년을 심혈을 기울여 평생에 마지막 사업을 끝까지 성공 시키려 하였으나 결국 물거품으로 되고 말았다. 끝으로 이라크의 석유는 그림에서 보는 봐와 같이 여러 국제석유회사의 손을 거쳐 흐르게 될 것이다.



글: 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계충무 고문은 서울대 경제학을 전공했고 한국전력, 대한석유공사(현 SK), 동아건설 등을 거쳐 한국석유공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한얼상사와 코람자원의 대표이사 활동으로 국제 자원개발 사업에 남다른 성과를 내기도 했으며 현재 HI&T 사장으로 취임해 이라크 할파야 유전개발 사업을 협상중이다.


*상기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CEO ENERGY>2013년 7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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