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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추격 혁신엔진을 장착하라

탈추격 혁신엔진을 장착하라

  • 기자명 이창현 경제경영칼럼리스트
  • 입력 2015.01.0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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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추월-추락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한국 빅 기업
캐치업 전략의 완성과 한계

[에너지코리아 1월호] 지금 몇몇 한국기업들은 전대미문의 위기에 몰렸다. 실적이 쪼그라들거나, 신제품이 힘을 못 쓰거나, 미래 기술개발의 방향성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큰 내상 없이 순항해온 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국가대표 기업이 막강한 역동성을 보여줬기에 가능했다. 단숨에 일본기업을 추월하고 미국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빠른 순발력과 추진력인 캐치업 Catch-Up 작전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거기까지였는지 모른다. 단 시간에 1등 따라잡기는 한국기업들의 최대 강점이자 특기다. 최근 10년 사이에도 이러한 재주는 여러 산업분야에서 통했고 일면 성공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성공유무는 남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자신만의 방식인 포스트 캐치업 Post Catch-Up으로 혁신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렸다. 과연 한국의 빅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패스트 팔로워 Fast Follower에서 벗어나 퍼스트 무버 First Mover로 도약할 수 있을까.

 

▲ 출처: 삼성전자 홈페이지

이돈주 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담당 사장은 말했다. “대화면과 S펜의 사용성을 극대화한 갤럭시노트4로 소비자들에게 차원이 다른 모바일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것입니다.” 지난해 9월 3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2014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였다.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4와 갤럭시노트 엣지를 새로 공개했다. 삼성전자의 하드웨어 기술력은 상당했다. 갤럭시노트 엣지는 측면에 손가락 마디 하나 넓이의 디스플레이를 적용했다.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아니라면 결코 완성할 수 없는 외형이었다. 갤럭시노트4도 프로세스 속도와 터치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두 야심작의 어깨엔 무거운 책임감이 짊어져 있었다. 삼성전자는 휴대폰 시장 점유율과 실적면에서 지난해 내내 감소세를 면치 못했다. 삼성전자는 신제품 출시를 애플의 아이폰6 출시일 보다 일주일 먼저 앞당기며 공세에 나섰다. 마침 아이폰6가 처음으로 대화면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선보이려고 할 때였다. 삼성전자로써는 대화면 시장 점유율을 뺏기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돈주 전 사장을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휴대폰의 최고 기술력과 혁신성으로 대화면 노트 제품군을 창출한 원조입니다. 자부심과 책임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추격전

원조 논쟁이었다. 대화면 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가 먼저 포문을 열었고 주력했던 싸움터다. 스마트폰의 창시자인 애플은 패드 기종을 제외한 스마트폰 기종에서 결코 4인치를 넘어서지 않았다. 한 손만으로도 만지작거릴 수 있어야 한다는 스티브 잡스의 오랜 고집이었다. 두 손잡이 스마트폰을 만든 삼성전자의 경기장에 뒤늦게 뛰어들기 싫다는 얘기였다. 그런 애플이 아이폰6를 통해 잡스의 디자인 철학을 깼다. 지난해 9월 10일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디 앤자 대학 안에 있는 플린트 센터에서 4.7인치와 5.5인치 대화면 아이폰6를 선보였다. 이제 애플은 대화면 기종에서도 삼성전자와 경쟁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경제뉴스 채널 CNBC는 이렇게 평가했다. “삼성은 갤럭시노트4와 갤럭시노트 엣지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애플을 놀라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사실 지난해 9월은 삼성전자와 애플이 2015년 스마트폰 시장을 어떻게 선도할 것인가를 두고 한판 힘겨루기를 한 중요한 승부처였다. 삼성전자는 평소 잘 하는 하드웨어 기술에 매달렸다. 반면 애플은 대화면이나 새로운 디스플레이를 통한 혁신을 꿈꾸지 않았다. 애플의 관심은 언제나 새로운 시장의 창출에 있다.

애플은 아이폰6와 함께 애플 워치를 발표했다. 애플이 처음 내놓은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다. 애플 워치는 애플의 아이팟이나 아이폰만큼 혁신성을 크게 담지는 못했다. 애플의 결정적인 한방은 애플 페이였다. 스마트폰에 결제기능을 세계 최초로 적용했다. 미국의 3대 신용카드 회사와 대형 은행들을 애플 페이 생태계에 집결시켰다. 과거 아이팟을 선보였을 때 음원회사들이 지배한 시장을 단숨에 정리했던 저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한 셈이다. 애플 워치나 애플 페이는 대화면 아이폰을 뛰어넘는 새로운 ‘원 모어 씽’이었다. 팀 쿡은 잡스의 대화면 철학을 버렸을지 모르지만, 혁신의 DNA를 충실히 계승했다. 이번에도 삼성전자는 추격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쩌면 누가 먼저 신제품을 내놓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시장이 누구를 인정하느냐과 관건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지난 한해 현대차 안팎에서 기술 우위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시장이 원하는 기술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주문했다. 미래 첨단 자동차를 주도할 선행 기술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는 게 정 회장의 경영 메시지 핵심이었다. “미래차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원천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몽구 회장이 지난해 3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현대자동차 유럽기술연구소에서 던진 화두였다.

정 회장의 유럽 출장에는 김용환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부회장과 신종운 생산개발담당 부회장이 동행했다. 둘 다 현대차의 기술개발을 이끄는 핵심 임원들이다. 2000년대 품질 경영으로 세계 5대 자동차 그룹이 된 현대차는 2010년대 들어 선행기술 경영으로 가속페달을 힘껏 밟고 있는 모양새다. 지금 자동차 산업 안팎에선 미래차 R&D 전쟁이 한창이다. 결국 자동차 연비와 성능 경쟁의 최상위 대결은 화석연료 내연기관인 가솔린과 디젤 엔진을 대체할 신기술에 있기 때문이다.

2013년 기준으로 폭스바겐은 대략 13조 원을 연구개발비로 쏟아 부었다. 도요타는 9조 원을, GM은 7조 원을, BMW는 5조 원을 투입하며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 하이브리드차 등 차세대 미래자동차 만들기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각각의 미래차 마다 선도기업이 나타난 지 꽤 됐다. 하이브리드차에선 도요타가, 수소연료전지에선 BMW가, 전기차에선 테슬라가 미래차 엔진의 기술력을 꽉 움켜쥐고 있다. 그럼에도 미래차의 대세가 무엇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사들은 여러 유망 분야에 걸쳐 연구 인력과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유독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열을 올린다. 지난달 16일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신형 쏘나타 하이브리드가 선보였다. 현대차는 올해 국내외서 총 5만5,000대의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판매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신형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2010년대 들어 현대차의 미래차 기술개발 능력을 가늠한 첫 번째 시험 대상일 수 있다. 현대차는 약 2년3개월의 개발기간 동안 약 1,800억 원의 개발비를 투입했다.

이기상 현대차 환경기술센터장은 말했다. “신형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친환경차 라인업을 22개로 확대하고 글로벌 친환경차 세계 2위를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곽진 현대차 국내영업본부장은 단언했다. “2015년은 현대차(005380)의 하이브리드 차량 대중화 시대의 원년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현대차의 미래를 견인할 것처럼 보였다.

 

▲ 출처: 현대자동차 홈페이지

추격의 습관과 족쇄

현대차의 하이브리드 전략은 기술 난제를 가리는 착시효과에 가깝다. 진짜 문제는 현대차가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 분야의 기술개발 주도권을 조금씩 빼앗기거나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이다. 하이브리드를 강조하면서 다른 기술개발의 허점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열린 LA오토쇼에서 도요타는 수소연료전지차인 미라이 MIRAI를 공개했다. 미라이는 우리말로 미래라는 뜻이다. 3분 만에 완충되고 최고 출력 155마력에 달한다. 최대 500㎞를 달릴 수 있다. 보조금을 합하면 판매가가 5000만 원대다.

반면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차는 1억 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마력과 주행거리 면에서 도요타에 뒤쳐진다. 자동차 명가인 독일의 아우디, BMW도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의 신제품 출시를 올해 본격적으로 할 태세다. 수소연료전지차는 현대차가 1998년부터 심혈을 기울이며 업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연구개발해 온 미래차다. 수소연료전지차의 원조가 새로운 미래들에 추월당하기 직전이다.

국내외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지난해 상반기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전년대비 1.5배나 증가했다. 하지만 현대차의 비중은 0.2%에 불과했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올해 국내 시장의 미래차 트랜드는 전기차가 될 공산이 큽니다. 전 세계에 15만대를 판 닛산의 리프 전기차가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폭스바겐의 골프 모델 전기차도 출시될 예정이고요. 그런데 현대차는 전기차 내수시장을 지키기도 벅차 보여요.”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는 스쿨존을 지나가듯 느리고 조심스럽다. 미국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의 가장 독보적인 리딩 컴퍼니다. 현대차는 전기차 트랙에 맨 끄트머리에서 달리고 있다. 중국의 자동차 후발주자인 체리자동차마저 3,000대가 넘는 전기차 모델을 세계시장에 내다 팔았다. 같은 기간에 현대차의 전기차 모델인 레이EV는 140대에 그쳤다.

현대차의 기술개발의 약점은 또 있다. 지금 가장 현실적인 미래차로 불리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선 현대차는 거론 자체도 되지 않고 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는 가솔린과 디젤 엔진에 전기모터를 보조 동력장치로 쓴다. 하이브리드에서 전기로 혁신하는 기술개발 중간단계다. 현대차는 여기서도 브레이크 등을 켜고 멈춰 서 있다.

과거부터 반복되는 추격의 한계고 기술전략의 실패다.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하이브리드차가 있다. 바로 LPG를 연료로 사용하는 LPi하이브리드다. 2003년 선 보인 이 모델은 해외 수출용이 아니라 내수용에 가까웠다. 북미시장이나 유럽에선 LPG 연료가 흔한 게 아니었다. 한국처럼 촘촘한 LPG 연료 공급망이 있는 나라에서만 운행이 가능하단 소리다. 현대차는 당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프리우스의 내수시장 확대를 방어해야 했다. 미래차 트랜드의 물결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방패 역할을 LPi하이브리드가 떠안았다.

2009년만 해도 현대차 내부에선 주력 미래차 방향이 그야말로 갈팡질팡이었다. 수소연료전지차 개발라인과 하이브리드차 개발라인이 옥신각신했다. 기술개발 총 책임자들이 나서 어느 해는 수소연료전지차를 현대차의 미래차라고 말했다고 그 다음해에는 하이브리드차가 미래라고 바꿔 말했다.

삼성전자도 애플 보다 먼저 만든 시장이 있었다. 지난 2003년 세계 최초로 MS 윈도 운영체제 기반의 미츠 MITS를 선보였다. 최적의 인터페이스와 앱스토어 개념까지 구상이었다. MITs는 Mobile Intelligent Terminal by SAMSUNG의 약자다. 애플의 애플리케이션과 같이 소비자들은 미츠라고 부르며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여러 사용 방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없었다. 혁신적인 기술의 장을 열고는 그 의미와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했다. 미츠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그룹이나 서로 비슷한 추격자의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자동차나 모바일 같은 제조업에서는 기술의 일대 전환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기존 제품의 규격과 생산방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시기다. 이때 혁신적인 기술 변화와 조직 정비를 하지 못하면 왕년의 강자로 기억될 뿐이다. 삼성이 닮고 싶은 기업은 애플이 아닌 독일 바스프 같은 원천기술을 확보한 강소기업이란 얘기가 있다. 100년이 넘어도 시장에서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만한 막강한 원천기술 말이다.

현대차의 미래차 선행기술 확보 노력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현대차는 1990년대부터 직접 알파 엔진을 개발하면서 도요타를 추격하는 데 10년이 넘게 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운도 따랐다. 북미 시장에서 도요타 리콜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추월의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최근 들어 자동차 산업의 표준기술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미래차의 원천기술을 누가 자동차에 장착하느냐에 따라 현대차의 미래가 뒤바뀔 판국이다. 다시 한 번 현대차는 도요타를 추격하는 족쇄를 차게 됐다.

▲ 출처: LG전자 홈페이지

동맹전선의 허점과 기회

그동안 삼성전자는 애플을 따라잡기 위해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구글과 공생전략을 펴왔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모바일에서 애플의 혁신성을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를 구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대신 삼성전자는 모바일 분야에서 시계, 목걸이, 헤드셋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웨어러블 기종을 선보이고 공격적으로 마케팅 펼친다. 스마트폰의 곡면을 깎거나 화면을 크고 선명하게 만들면서 차별화의 길을 걸었다. 하드웨어 부문에서는 분명 눈에 띄고 신속해 보였다. 그런데 혁신 시장에서는 번번이 애플의 소프트웨어 변화에 끌려 다니는 처지다. 삼성전자에겐 구글이 최선책이자 한계점이다.

혁신의 연결고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는 자체 소프트웨어인 타이젠 OS를 통해 이러한 추격자의 족쇄를 끊으려고 시도 중이다. 지난 2012년부터 삼성전자는 인텔, 화웨이, NTT도코모 등 글로벌 IT 기업과 타이젠 연합을 결성했다. 그런데 출시시기만 2년이나 넘게 조율 중에 있다. 그만큼 타이젠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자칫 OS 독립을 외쳤다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시장의 1등 지위를 하루 아침에 내놓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가 양분한 세계 스마트폰 OS 시장에서 타이젠의 성공유무도 미지수다. 삼성전자의 모바일 탈추격 전략은 이처럼 피가 마르는 선택이 뒤따른다. 삼성전자와 구글 동맹 전선은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삼성전자만 딴 생각을 품는 게 아니다. 구글은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모바일 하드웨어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다. 양쪽 다 조심스럽게 동맹 전선에 다변화를 준비하면서 비상을 꿈꾸고 있다.

구글의 변심으로 수혜를 입고 있는 국내 기업이 있다. 바로 LG전자다. 최근 LG전자는 구글과 광범위한 사업·기술 영역에서 특허공유 계약을 체결했다. LG전자는 지난해 3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LG전자의 전략 스마트폰인 G3의 국내외 판매가 호조 덕분이었다. 3분기 LG전자의 스마트폰은 1,680만대나 팔려나갔다. 2분기 1,450만대를 경신하는 수치다. LG전자는 2009년 애플 공습 이후 스마트폰 경쟁에서 느릿느릿 추격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최근 행보는 LG전자의 부활을 말해준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체제에서 약 5년 만에 스마트폰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는 기대감이 치솟는다.

LG전자는 2023년까지 향후 10년간 구글의 안드로이드, 데이터 처리, 통신, 정보보안 등을 자유롭게 자사의 신제품에 탑재할 수 있다. 10년의 탄탄한 동맹전선으로 정말 삼성전자를 추월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1등 기업이 갑자기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기존 업체에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구글은 초기에 대만 HTC와 연대했다. 그러다 한국의 팬택을 선택했다. 삼성전자와는 끈끈한 정을 꽤 오래 나눴다. 이번에는 LG전자다. 구글에겐 다루기엔 너무 커 버린 삼성전자 보다는 LG전자처럼 기술과 속도 면에서 좀 뒤처지지만 가능성이 농후한 우등생이 필요했다. LG전자에게는 10년의 공생이 10년의 유효기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바일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LG전자는 2009년 MS와 사업협력을 맺으면서 윈도모바일 체제로 갔습니다. 아무도 MS와 선뜻 손을 잡지 않을 때였죠. 안드로이드가 무섭게 세력을 뻗어나갈 찰나였죠. 돌이켜 보면 그때의 선택이 LG전자가 스마트폰에서 쓴 잔을 맛본 결정적 이유가 됐죠. 동맹전선도 동맹전선 나름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LG전자와 구글의 연대는 신의 한수가 될 걸로 예상합니다.” 어찌됐든 LG전자에게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은 분명한다.

▲ 출처: 샤오미 홈페이지

패스트 팔로우 차이나

올 한해도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등 한국의 빅 기업들은 모두 따라잡기라는 추격의 트랙 안에서 무한도전을 펼쳐야 한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흥망성쇠에서도 이러한 쫓고 쫓기는 역사가 이어져 왔다. 불과 5, 6년 전에 도요타와 GM은 추격에서 탈추격으로 넘어서다 문턱에 걸려 주저앉았다. 노키아는 휴대폰 선도기업에서 비운의 몰락기업으로 기록됐다. 샤오미는 신흥 추격자로, 애플과 구글 정도만이 초월적인 혁신기업이라고 불린다.

글로벌 추격 경기장에서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자리가 쉴 새 없이 뒤바뀐다. 국가 대항전 성격도 띈다. 그동안 미국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에게 추월을 당하고, 일본기업들이 한국기업들에게 따라잡히고, 다시 미국기업이 저만치 앞으로 치고 나가는 반복을 말이다. 지금 한국기업은 미국과 유럽에 포진한 초일류기업들만 경쟁기업으로 봐서는 안 된다. 국내 산업 전반에서 턱밑까지 따라온 중국 기업들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국가 파워와 중국 기업의 추격 전략이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는 때다. 한국기업들은 전방도 중요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뒤통수를 조심해야 하는 시기다.

이근 경제추격연구소 소장 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그동안 기술 사이클이 짧은(short-cycle) IT 산업을 중심으로 선진국을 따라잡았습니다. 이제 중국이 무섭게 추격해오는 상황에서 앞으로 한국이 선진국으로 안착하기 위해선 의료 바이오 부품소재 등 기술 사이클이 긴 산업을 키워야 합니다.” 삼성그룹이 지난 2011년 5대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바이오, 전기차 배터리, 의료기기, 발광다이오드, 모바일솔루션으로 편성한 배경에도 이러한 롱 사이클 전략의 중요성과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숏 사이클 시장을 넘어서는 체력과 정신력이 아직 약하다는 점이다. 이유가 있다. 숏 사이클 시장에선 추격기업들이 언제든 중원을 쟁탈할 수 있다. 혁신기업이 탄생시킨 생태계에서 소비자 취향에 맞는 신제품을 마구 쏟아 부으면서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방식 말이다.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보여줬던 성공 방정식이다.

그런데 롱 사이클 시장에 진입하면 꾸준히 기술 혁신 주도에 올인해야 한다. 애플처럼 매번 신제품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세상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중원 외부로 시선을 돌리다 보면 중원을 다른 추격기업에 빼앗기기 일쑤다. 애플의 휴대폰 점유율은 수 년째 2위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애플의 영업이익과 매출은 상승세에 있다. 혁신을 통해 매년 롱 사이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지금 글로벌 중원 시장에서 미국의 초월적인 혁신기업은 한국기업의 주요 경쟁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우리의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돌변했다. 중국 샤오미나 화웨이는 중저가 스마트폰으로 단숨에 삼성전자의 소비층을 공략하며 세력을 무섭게 확장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삼성전자의 하드웨어와 애플의 소프트웨어 장점만 끌어다 모방했다. 삼성애플형 신세계를 창출했다. 중국이 스마트폰 시장에서만 무한 추격 전략을 구사하지 않는다. 짝퉁 천국으로 비하했던 중국은 이제 자동차, 조선해양, 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에서도 따라잡았거나 앞서가기 시작했다. 한국은 패스트 팔로우 차이나의 태풍 영향권에 들어간 지 오래다.

중국의 추격 전략에는 차이나 머니라는 핵폭탄두가 장착돼 있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장은 말했다. “중국 자본의 한국 침식은 업종을 불문하고 확대되고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제주도 땅을 사던 중국인들이 카카오나 CJ E&M 등의 지분 인수에 혈안이 돼 있다는 게 최근 트랜드입니다.” 최근 타결된 한중 FTA로 한국기업의 내수시장은 중국영토까지 넓어지게 됐다. 이는 반대로 중국 모방기업이 맘만 먹으면 국내 내수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제 한국의 빅 기업들은 미국, 일본 등의 선진기업을 추격하면서 중국 등 후발국의 추격도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빠른 추격 전략과 단단한 추격 방어 전략을 동시에 구사해야 한다.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전략으로 M&A, 신기술개발, 신흥시장 수출 등을 펼쳐야 한다. 저렴한 노동시장을 확보하고 글로벌 생산기지 확충에 나서야 한다. 한국기업들이라면 누구나 해봤고 구사했던 경영기법이다.

그보다 근본적인 전략이 있긴 하다. 바로 탈추격이다. 표준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길 말이다. 시장의 중원 보다 시장의 미래를 선점해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도전정신 말이다. 앞으로 10년 한국기업들이 추격꾼으로 남을지 선도자로 변신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 한국기업의 한계와 가능성과 미래가 공존한다.

 

본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ENERGY KOREA> 2015년 1월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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