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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리더십’ 재발견으로 스타CEO 돼라

‘한국형 리더십’ 재발견으로 스타CEO 돼라

  • 기자명 이창현 경영전문칼럼리스트
  • 입력 2015.02.0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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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경영 리더십을 말하다
정주영·이건희의 기업가정신이 실종된 시대

[에너지코리아 2월호]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 사라진 시대다. 위기 때마다 빛을 발하는 경영 리더십도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대를 대표할 만한 강력한 CEO도 부재중이다. 한국경제는 특정 시대마다 그 시대를 대변하는 대표적 리더십과 경영자가 출몰했었다. 1970, 80년대는 오너십으로 대변되는 제왕적 리더십이 지금의 글로벌 기업의 모태가 됐다. 삼성의 이병철과 현대의 정주영과 같은 거인들이 주도했다. 이어 창업 1세대들의 후계자들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때마다 그룹을 번번이 살려내며 글로벌 리더십을 과시했다. 2000년대는 도전과 혁신 리더십으로 중무장한 전문경영인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시대정신을 어떻게 경영화해 내느냐에 따라 기업가 정신이 새롭게 탄생했던 셈이다.

문제는 2010년대다. 몇몇 그룹에서는 3·4세 경영자의 리더십이 되레 경영위기를 불러일으키는 골칫덩어리 신세로 비춰지고 있다. 오너가 법정 구속된 그룹에서는 장기 비전이 잡히질 않아 갈팡질팡 거린다. 공공기업의 CEO는 최근 국가적 리스크가 터질 때마다 이유 불문하고 목이 달아나기 일쑤였다. 거대 기업만 리더십의 위기가 온 것은 아니다. 업력이 20년 넘은 중견 중소기업들이 슬슬 2세 가업승계에 시동을 걸지만, 대기업만큼 치밀하지 못해 위태로운 곳이 한둘이 아니다. 어쩌면 2015년은 한국형 경영 리더십이 일대 변혁을 겪을 중요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지난 1월 13일이었다. 삼성그룹의 사내방송 SBC는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신년 특집 프로그램으로 ‘다시 기업가 정신’ 4부작 시리즈의 첫 방송을 시작했다. 한국과 독일과 일본을 아우르는 대표적 기업가 정신을 발굴해 전파했다. 이번 사내방송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이 그룹의 경영 운전대를 움켜 쥔 뒤에 처음 사내에 제시한 경영 메시지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부터 기업가 정신을 그룹 안팎으로 확산하는 데에 공을 들였다. 지난해 말 폐간한 사보 ‘삼성앤유’의 마지막 주제도 바로 기업가 정신이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성공 스토리를 집중 조명했다.

연초부터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경영 리더십의 방향을 찾고 있었단 얘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삼성그룹의 3세 경영승계는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의 증명에 앞서 그룹의 핵심 지분 확보와 계열사 경영권 인수에 열을 올렸다. 경영일선에서 위험과 위기를 직접 극복해가며 그룹의 주인이 되는 길은 험난하다. 자칫 실패와 손실의 책임을 질 수도 있다. 대신 주어진 황태자 신분으로 왕관을 확보하고 지배구조를 재편하는 길이 빠르고 합리적일지 모른다.

이재용 부회장은 2000년 초반부터 후자의 길을 걸어왔다. 막상 이건희 회장이 건강상의 문제로 급작스레 경영일선에서 후퇴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 경영 리더십에 공백이 발생해 버렸다. 아들 이재용 부회장은 이제 그룹의 황제 자격을 넘어 전쟁터의 명장으로의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그러자 이 부회장은 올 연초부터 삼성의 경영 리더십 족보를 뒤져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이었다.

 

▲ 사진출처: 삼성 홈페이지

오너십과 위기경영

사실 한국형 경영 리더십의 폭발력은 매번 위기에서부터 시작돼 왔다. 올 연초부터 국내 기업의 시무식에서는 공통적인 화두가 있었다. 하나 같이 위기경영과 생존경영을 하자는 목소리였다. 정말 지금이 진짜 위기냐, 진짜 생존위협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수많은 조직원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하나의 목표로 가기 위해서는 그룹 전반이 전시상황으로 돌변해야 한다. 만약 전시 상황이 아니라 평시라면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될 수가 없다. 매 순간 조직원이 리더의 입만 쳐다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삼성을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으로 탈바꿈 시킨 이건희 회장의 글로벌 리더십에도 줄곧 한 가지 전제 조건이 따라다녔다. 바로 지금이 회사의 최대 위기라고 임직원들에게 강조했다는 사실이다.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시작된 1990년대 한국형 경영 리더십의 기본 원리는 위기를 미리 내다보거나 조장하면서 사전에 조직을 재정비하는 방식이었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 교수는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위기 상황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는 리더 밑으로 자동적으로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예측 가능한 시대일수록 리더십의 영향력은 적은 편이죠. 불확실성이 동반된 경제위기가 불어 닥치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강력한 오너십이 그룹 전반에 순식간에 전파되고 또 직원들이 믿고 따라오게 됩니다.”

법적인 문제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10년 3월 극적으로 복귀했다. 이 회장으로서는 자신의 명불허전 리더십을 다시 한번 보여줘야 했다. 이때에도 그는 위기경영론을 꺼내 들었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대부분 사라질 것입니다.” 삼성그룹의 5대 신수종 사업을 결정하고 수 십 조원에 달하는 투자 계획도 확정했다. 2010년 경영실적은 사상 최고치를 연이어 수립하며 위기경영에 화답했다. 매출 150조원을 돌파했고 영업이익도 사상 최대인 17조 3000억 원을 기록하며 150-15 클럽(매출 150조원-영업이익 15조원 이상)에 가입했다. 위기가 이건희 회장과 삼성에게 확실한 기회가 됐다.

 

▲ 사진출처: LG홈페이지

클락 빌딩과 플랫폼 리더십

그렇다면 기업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몫은 언제나 위기를 부르짖는 오너를 통해서만 가능할까? 경영학의 대가인 짐 콜린스 교수는 그의 저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경영자는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다.” 짐 콜린스 교수가 주장한 클락 빌딩(Clock Building)의 핵심 내용이다. 한번만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보다는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 시간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졌거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은 시간을 알려주는 것이고, 한 개인의 일생이나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을 뛰어넘어 오랫동안 번창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은 시계를 만드는 셈이다.

그러한 면에서 애플은 스티브 잡스 타계 이후 클락 빌딩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중요한 기업사례가 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잡스 이전과 이후 애플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큰 변동이 없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스코어로 보면 잡스는 분명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애플은 잡스의 후계자 팀 쿡의 리더십 보다 자체적인 시스템으로 혁신 기업의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이건희 회장은 시간을 알려주는 리더에 가깝다. 이재용 부회장이 극복해야 할 리더십 승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재벌만의 독특한 리더십인 오너십 때문이다. 오너십에 의해 장악된 기업은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 심리적 소유의식을 갖기가 힘들다. 직원들의 심리적 소유의식이 없다면 아무리 오너가 자율성을 강조하고 비전을 제시해도 종업원들이 심정적으로 움직이질 않는단 뜻이다. 오너가 직원들에게 시간을 알려줘도 서로 각자의 시간 속에서 일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LG전자가 좀처럼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LG전자는 2000년대 이후 전문경영인이 이끌어오다가 애플 아이폰 등장 이후 외부적 위기가 찾아오자 오너 가(家)의 구본준 부회장이 구원 등판했다. 구 부회장은 2011년부터 줄곧 위기경영과 함께 1등 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LG의 1등 비전은 오래 전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LG만의 고유의 기업정신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말한다. “과연 직원들이 제대로 따를까요? 구원투수로 오너가 등판했다지만 시간을 제대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위기탈출을 위해서라면 LG의 전통적인 리더십 스타일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다른 경쟁자를 누르고 오직 시장의 1등이 목표인 오너십은 최근의 기업 생태계에서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될 공산이 크다. 특히 IT전자와 같은 하이테크기술 시장에서 플랫폼 리더십(Platform Leadership)에 대한 CEO의 이해가 리더십 덕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예전에는 한 가지 산업에서 최고가 되기만 하면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산업과 산업 사이의 경계가 점차 사라지는 플랫폼 시장에서는 이종 산업끼리 융합시키는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 관건이 됐다.

애플은 2008년 앱스토어를 만들어서 모바일 제조기업, SW기업, 인터넷기업, 통신사업자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다. 지난해에는 애플페이를 만들어 금융권의 새로운 먹거리를 안겨줬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개방형 플랫폼 리더십의 발견이 있었다. 바로 카카오톡이다. 카카오톡의 생태계 안에서는 게임업계, 유통업계, 미디어업계 등이 자신만의 수익사업을 구상해 펼치고 있다. 이제 IT업계는 플랫폼 리더십의 개념을 장착한 리더가 시장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회사가 언제까지나 싸워야 할 존재가 되는 건 아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리더의 친위대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삼성의 미래전략실이나 현대차의 기획조정실 같은 시스템 말이다. 특히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기업의 오너일수록 미래전략실과 같이 그룹의 기획, 재무, 홍보, 감사 기능을 두루 갖춘 파워 조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리더십의 파괴력은 달라질 수가 있다.

그렇지만 삼성의 전략실과 현대차의 기획실은 그 태생부터 차이가 난다. 삼성의 미래전략실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비서실과 이건희 회장의 전략기획실을 거치면서 점점 진화했다. 이제 경영 3세인 이재용의 미래전략실로 체질이 완전 변화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최근에야 오너의 친위대를 꾸리는 중이다. 평소 가신 조직을 두지 않고 혼자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정몽구 회장의 경영 스타일 때문이다.

게다가 현대차는 엄밀히 따져 이제 창업한 지 15년이 정도 된 신생기업이다. 고 정주영 회장의 현대그룹은 지난 2000년에 왕자의 난에 의해 현대차, 현대상선, 현대중공업 등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현대차는 2000년대를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도요타, GM 등 일류 기업을 따라 잡느라 그룹 통제력을 개선하는 작업 따위에는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말한다. “현대차는 내부적으로 2007년부터 도요타를 경쟁상대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도요타에선 더는 따라잡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요즘에는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미래전략실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높을 뿐입니다.”

2010년대 들어 현대차는 재경본부를 축소하고 기획조정실의 자금기능을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 관리까지 흡수한 기획조정실은 그룹 내에서 이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핫라인이다. 갈수록 기획조정실의 기능이 강조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현대차는 창사 이래 몸집을 가장 크게 부풀리며 성장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그 안에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리스크가 간간이 터진다. 게다가 자동차, 금융, 건설, 제철 등으로 펼쳐진 현대차그룹의 이종산업 간 통제가 복잡하다. 막강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능수능란한 손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대차는 기획조정실과 함께 현대차 산하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의 기능도 강화 중이다. 역시 삼성의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삼성경제연구소를 다른 기업들이 부러워하는 이유는 삼성 내부에서 든든한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정보전쟁 시대에 그룹 안에 믿을만한 정보체계를 집중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였던 셈이다.

 

2인자의 가능성

재벌 기업의 오너십에서만 한국형 경영 리더십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문경영인들에게도 눈에 띄는 리더십을 찾을 수 있다. 2000년대는 전문경영인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룹 전반에서 전문경영인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는 오너가 다음의 2인자 자리다. 경영 리더십이 탁월하고 오너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야만 가능한 자리다.

신종균 삼성전자 IT&모바일부문 사장도 삼성그룹의 새로운 2인자 자리에 근접한 인물이다. 최지성 삼성미래전략실장의 뒤를 이어 이재용 부회장과 호흡을 맞출 주자로 손꼽힌다. 신종균 사장은 삼성 휴대폰 역사를 쓴 장본인이기도 하다. 과거 1000만대 이상 팔린 벤츠폰, 블루블랙폰, 울트라에디션 시리즈 등 피처폰 개발의 총 책임자였다. 2010년부터는 스마트폰 갤럭시S 시리즈의 개발을 지휘하며 세계 스마트폰 시장 1등을 고수하고 있다.

삼성에 신종균 사장이 있다면 현대차에는 양웅철 부회장이 있다. 현대차의 R&D 부문을 총괄 책임지는 양 부회장은 현대차의 소방수 역할을 자처한다. 양 부회장은 매번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전면에 나서 해결책을 찾는다. 그는 “품질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누구보다 쓴 경험이 될 것”이라며 실패를 통해 성공의 방정식을 구하고 있다.

백기복 국민대 경영학 교수는 과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 전문경영인이 부회장을 달면 고문역할이나 하면서 남은 임기를 채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부회장직에 책임과 권한이 크게 실립니다. 노련한 현장경험과 시니어 리더십을 경영일선에서 발휘하기를 원하는 겁니다.”

특히 LG가에는 오랜 기간 한 업종에 종사하며 사업을 키워 온 전문경영인들이 수두룩하다. 하현회 LG전자 사장은 LG필립스LCD 초대 사장을 맡은 지 4년 만인 2003년 전 세계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세계시장 점유율 1위로 올려놓는 괴력을 과시했다. 2013년 가전사업인 HE사업본부장이라는 중책이 맡은 뒤 지난해 연말 그룹 지주회사 사장으로 중용됐다. 현재 구본준 부회장의 신임을 크게 받고 있다는 평가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지난 2005년 취임 이후 한때 LG생활건강 주가를 15배 이상 신장시키는 등 사상 최대 경영성과를 만들어 냈다. 박진수 LG화학 부회장은 주요 화학 계열사 CEO를 두루 거치며 풍부한 현장 경험과 전문 지식으로 합성수지(ABS),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 고흡수성 수지(SAP) 등 주요 사업들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어쩌면 오너의 경영리더십은 그룹 차원에서 매만져진 것일 수도 있다. 반면에 수많은 전문경영인은 샐러리맨 출신으로 자신만의 신화와 리더십을 쌓아 올려야 한다. 전략실이나 기획실 같은 가신그룹 없이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여기서 그들은 끊임없이 오너로부터, 직원으로부터, 고객으로부터 수많은 검증과 시험을 거쳐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말한다. “흔히 대기업 사업본부장을 달았다고 하면 군대에서 별을 단 것과 다름없이 큰 영예를 안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올라가기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일처럼 어려운 자리죠.” 우리가 일반 직원에서 스타 CEO로 거듭난 전문경영인들의 행보에 환호하는 이유다.

 

한국형 리더십의 재발견

그간 빠른 속도로 오너십이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오너의 친위대 기능이 강화되고, 전문경영인 시대가 열린 것은 한국 기업사회가 그만큼 유기적인 혁신성을 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한국 CEO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착했다. 사업의 방향을 결정하고 밤낮 없이 노동의 강도를 높여 생산량만 늘리는 게 전부였다는 얘기다. 산업화 시대의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 그나마 통하던 시절이었다. 세계에서 1등이 못되더라도 실적만 오르면 만족하던 때였다.

당시에는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이 전 세계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기업의 무한 품질 경쟁시대에 맞춰 새로운 경영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삼성과 현대차 같은 기업의 글로벌 CEO들이 재빨리 질적 위주의 전략으로 경영 스타일을 수정했다. 과거 무엇을 만드느냐 보다 이제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경영 판단의 새로운 기준이 됐다는 뜻이다.

과거 삼성전략실장과 삼성종합기술원장을 거쳐 농심 회장을 지낸 손욱 서울대 초빙교수는 한국형 경영 리더십의 뿌리에 대해 세 명의 CEO가 있다고 제시한다. 바로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정주영 현대 창업주 그리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다. 모두 산업화 시대의 역꾼들이었다. 한국형 경영 리더십의 뿌리를 알아야 미래 리더십을 그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바로 지금의 재벌 3·4세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한국형 경영 리더십이 앞으로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선대의 경영리더십 DNA를 계승한 재벌 2세대들인지, 아니면 2000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장 속에서 등장한 국내외의 수많은 전문경영인들인지, 누가 현 시점에서 한국형 리더십을 촉진시키고 있는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시기란 얘기다.

사실 한국만큼 경영 리더십의 중요성과 탐구에 대해 홀대 받는 곳도 없다. 국내 서점에서 제일 안 팔리는 자기계발서 가운데 항상 리더십 관련 서적이 대거 들어갈 정도다. 자구적인 노력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출판업계가 앞 다퉈 해외 리더십 이론과 사례를 엮어서 책으로 찍어냈지만, 독자들은 그게 현실에서 하나도 작동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 중국에서는 중국형 리더십에 대한 연구와 출판사업에 불이 붙고 있다. 글로벌 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중국의 리더십이 어디에서 나오고 있는지를 찾는 작업이다.

이건희 회장은 “1명의 인재가 1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했다. 결국 리더의 역량이 한 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이병철 창업주는 ‘호암자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제적 타산이나 위험을 초월해 국가적 견지에서 첨단 기술에 도전한 삼성의 확고한 기업정신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사업보국이 시대정신이자 기업가 정신의 최선이었다. 삼성과 현대를 비롯해 두산, SK, 롯데, 효성 등 국내 재벌의 창업주가 이 정신을 바탕으로 한국의 기업사회를 이룩했다.

한동안 한국 기업사회에서는 이병철, 정주영이나 이건희, 정몽구 같은 거인이 다시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과거 무에서 유를 창조한 창업 1세대의 불굴의 기업가 정신이 아들과 손자 세대까지 내려가면서 계승 발전됐다가 아예 실종되고야 말았다. 이제 손자 세대들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성공신화를 복기하며 리더십의 새 페이지를 써야할 차례다. 지난 50년간 이어져 온 한국형 경영 리더십을 살펴보고 재발견하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다.

 

본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ENERGY KOREA> 2015년 2월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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