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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르포] 어느 합법적인 주유소 습격사건

[현장 르포] 어느 합법적인 주유소 습격사건

  • 기자명 이권진 기자
  • 입력 2009.09.0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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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유사석유 뿌리 뽑는 검사원 밀착 동행

석유관리원 검사팀 동행기 3탄

①주유소, 노출 및 비노출 검사활동

②길거리 유사석유 판매 현장

③유사석유 제조장 단속 

점심시간 조금 지나서 찾은 석유관리원 수도권지사는 한산했다. 검사원들은 이미 오전 일찍 검사활동을 나갔다고 한다. 취재차 만나기로 한 담당 과장도 출장 중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출장이란 석유관리원 검사원이 유사석유 단속을 위해 밖으로 업무를 보러 나갔다는 말이다. 하지만 검사원의 일과가 대게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외부 단속활동이라고 하니, 사실 검사원들에게 현장이 곧 ‘사무실’인 셈이다.

약속한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검사 계획이 잡혀서 먼저 나왔습니다. 다른 분을 만나시면 될 것 같아요.” 검사원과 취재차 진짜 사무실에서 만나는 건 쉽지만은 않다. 검사계획은 수시로 수정되고 철저한 보완이 유지된다. 단속활동 일정은 검사원 자신도 당일 파악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미리 세부 일정이 공표되지 않는다. 그 만큼 외부 보완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 석유관리원 검사원들이 미리 주유소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있다.
“검사는 사전통지가 없어요. 주유소 검사량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검사팀은 석유 유통 전 과정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길거리 유사석유 판매행위 같은 비석유사업자 단속도 말이죠. 다시 말해 국내 석유품질 및 유통관리를 전담하는 기관이 석유관리원입니다.”

수도권지사 도재정 경인검사팀장의 말이다. 석유관리원은 지난 5월 1일 법정기관으로 대대적인 변신을 했다. 품질관리 전문에서 이렇듯 그 기능을 확대한 것이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 의해 유통질서 문란행위, 유사석유제품의 제조, 유통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됐다.

주유소 검사활동을 위해 두 명의 검사원에게 인도됐다. 주유소 노출 검사다. 주유소에서 휘발유, 경유의 시료를 채취해 관리원 시험실에 넘기는 일이다. 차량에 시동을 걸기 전 그들은 제일 먼저 동선을 짰다. 흡사 장거리 행군 경로를 파악하는 모습과도 같이 지도를 펴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흰 A4용지가 들려 있었는데 자꾸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

알고 보니 그 용지는 주유소 블랙리스트였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주유소 등급 리스트다. 석유관리원의 보안문서인데 주유소 유사석유 단속을 위한 자료로 활용된다. 등급은 여러 가지 지표에 의해 설정된다. 유사석유 판매 전적이 있거나, 민원여부, 기타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다. 하지만 리스트의 완성도를 높이는 요소에는 검사원의 직감이 있다. 주유소 현장을 다니면서 파악하는 정보는 월말 유사석유 단속 통계 수치와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위험 등급이 낮다고 단속대상에서 제외 되는 것은 아니에요. 모든 주유소를 신경 써서 검사하죠. 그저,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저희 수도권지사 단속대상 주유소가 3300개에 달하는데 안 가는 곳이 없어요. 심지어 배 멀미를 참아가며 최북단 섬인 백령도도 갑니다. 주유소가 있는 곳이라면 검사활동을 해야죠.” 경인검사팀 공영윤 대리의 말이다. 일반적으로 주유소 노출 검사는 2인 1조로 하루 13~15개 주유소를 돈다.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많은 때에는 20개 주유소를 넘는다고 한다.

▲ 준비한 시료통에 석유제품을 채취하고 있다.
막상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마음이 요란했다. 법정 업무라는 걸 동행한 게 처음이기도 하지만 여태 소비자 입장에서 주유소를 대했던 평소 감정 때문이었다. 주유소란 커피숍과는 달리 지불한 금액만큼의 서비스가 나오면 후딱 나가버려야 하는 훈련소 점심시간 같은 거였다. 그래서 이게 휘발유이긴 한데 정품인 것인지, 정량을 주유하는 건지 막연한 의심을 발동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그냥 믿는 것이다. 가끔 주유기 숫자판을 흘끔 쳐다보는 일로 ‘제대로 넣고 있는 거지’하는 일종의 제스처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갑’의 주유소에서 ‘을’인 소비자의 태도란 소극적일 수밖에

검사원의 행동은 일사불란했다. “안녕하세요, 석유관리원에서 검사 나왔습니다.” 검사원 한 명이 주유소 관계자에게 인사를 건네는 동안 다른 검사원은 검사차량 트렁크에서 시료채취용 통을 꺼내 주유기마다 놓았다. 시료는 대상 주유기에서 휘발유 1.5리터 2개, 경유는 1리터 2개를 채취한다. 2개를 채취하는 것은 실험용과 보관용을 위해서다.

이는 주유소 판매사업자가 유사석유 판정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할 경우 보는 앞에서 봉인한 채취용 시료통을 개봉해 다시 시험할 수 있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봉인의 경우에도 판매사업자 입회 아래 모든 게 진행된다. 시료채취 통 뚜껑에 노란 공업용 본드를 찍고 봉인지를 붙인다. 다음 투명 테이프로 봉인지 전체를 시료통에 밀착한다. “홀로그램 방식 및 접착용지 등이 있지만 주유소 관계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방법입니다.” 검사원 최종원 대리의 말이다.

주유소 관계자는 편안한 태도로 검사원들에게 말을 건넸다. “자주 나오세요. 여긴 좀 그래야 해요.” 공영윤 검사원의 표현으로는 주변 주유소가 싸게 판매하는 걸 견지하기 위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주유소 과당경쟁은 이렇듯 검사과정에서도 영업적인 언사로 분출되기도 한다. 끝으로 채취한 유종별 각각 계산서를 끊었다. 노출 검사차량의 경우 대략 하루 10~20만원의 유류 경비가 들어간다고 한다.

▲ 2인1조의 노출 검사원들이 봉인지 작업과 품질검사용 시료채취 확인서를 작성하고 있다.
“노출 검사를 하게 되면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에요. 들어갈 때부터 검사는 시작된다고 보시면 되요. 채취만 하는 게 아니라 정보, 수집이 관건이라는 거죠. 가격이 다른 주유소보다 상대적으로 너무 저가이거나, 들어가자마자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거나, 특정 제스처를 취하면서 분주하게 행동하는 경우 더 주의해서 살핍니다.” 공영윤 검사원의 설명이다. 오래하다 보면 해당 주유소의 이력이 머릿속에 그려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이력을 생성하면서 주유소들을 검사했다.

이렇게 채취한 시료통은 시험팀에서 정밀검사를 해서 적합성을 따진다. 만약 비정상 판독이 확정되면 지자체에서 행정처분을 때리게 된다. 영업정지, 과징금징수 등이 통보되는데 과징금은 4000~5000만원 수준이다. 그럼에도 유사석유 사용을 자행하는 주유소는 검사원들의 표현으로 ‘마약에 중독된 사람의 심정’이라고 한다. 그 징벌의 화기를 알면서도 달려드는 부나비 같은 꼴이다. 여기에 2차로 수사기관에 고발조치 당하고 영업정지는 3개월을 받는다.

잠행과 검사원 사이
‘번호판을 수시로 교체한다. 혹시나 알아볼까, 분장을 한다. 연기자처럼 여행자 행색을 연출한다.’ 이 모든 게 주유소 검사활동 가운데 비노출 차량에서 이뤄진다. 비노출 검사는 자체 시험장치가 부착된 차량으로 검사원이 일반적인 주유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작은 시험실이 차량에 있기 때문에 주유를 한 후 바로 유사석유 판독을 할 수 있다. 따라서 검사원이나 차량의 신분과 목적이 밝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비노출 검사에서 유사석유 의심이 판독되면 바로 노출 검사팀에 연락합니다. 공개적인 시료채취로 증거를 잡는 것이죠. 요즘은 주유소 관계자들이 비노출 검사활동을 많이 인지하고 있어 더욱 조심하고 있습니다. 민원이 들어올 때도 ‘검사 바로 확인하는 그런 차 있지 않냐?’라며 특정 주유소 검사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비노출 검사를 함께 한 검사팀 김성민 대리의 말이다. 비노출 차량에는 일반 차량과는 다르게 별도의 탱크가 존재한다. 차량 트렁크 내부에 있는데 몇 개의 관과 가느다란 선들이 얽혀있었다. 언뜻 간단한 시험장치 같아 보였지만 차량과 합해 가격이 1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석유관리원이 국내외 특허를 낸 국산 장치이기도 하다. 트렁크에서는 유류의 적합성 테스트가 진행되는데 모든 조정은 차 안에서 이뤄진다. 노트북에 그 결과가 수 분 내로 떠오른다.

▲ 비노출 차량 뒷자석에서 검사원이 주유한 휘발유를 시험하고 있다.
2인 1조의 또 다른 1인인 한관욱 과장은 말한다. “법정기관 출범 이후 업무량은 늘었는데 인력은 그대로라 어려움이 좀 있어요. 저도 검사팀에서 행정업무를 보는데 이렇게 지원을 나오고 있죠. 순수한 검사활동에 집중하기에 다른 잔업이 많은 것도 현실이죠.”

사실 검사팀의 활동은 외부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보통 오후 5시에 사무실에 들어오면 보고 문서를 작성한다. 그러다보면 퇴근 시간을 넘겨 잔업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2인 1조로 움직이기에도 지사별 검사원 수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인데 정부의 공공기관 인력 감축의 분위기 속에서 대안을 마련하기도 막막하다.

더욱이 검사원들의 개별적인 고민은 더 깊다. 애초에 2인 1조의 표본을 보여준 투캅스가 있었는데 이제 가물가물하지만 안성기는 이런 대사도 날렸다. “잠깐 슈퍼 간다고, 집나가서는 마누라 얼굴 못 본 지 보름이다.” 검사팀의 고충도 다르지 않다. 순환보직 때문에 자주 지사발령이 난다. 가정을 꾸린 가장의 입장에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몇몇 검사원들은 홀로 지사발령지에 방을 얻어 생활하기도 한다.

그래도 최근 석유관리원의 적발확률은 1% 가까이 끌어올리고 있다. 석유관리원의 인력규모와 검사범위를 고려한다면 상당한 실적이다. 특히 주유소 유사석유 검사활동은 석유 유통의 최전선을 감시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종일 검사를 한 비노출 차량에서 석유냄새가 짙게 깔렸다. 수시로 뒷문을 연다는 검사원의 말처럼 검사활동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인력확충’ ‘예산편성’ 등 정부의 환기장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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