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멘토와 애인을 소유한 신윤복을 질투하다

멘토와 애인을 소유한 신윤복을 질투하다

  • 기자명 이윤경 영화 칼럼니스트
  • 입력 2010.08.05 15:07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돌아올 모월 모일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6년째 되는 날이다. 나름 ‘자유로운 영혼’을 표방했는데 이렇게 오랜 기간 영화 관련 회사를 다니게 될 거라고 예상치 않았다. 그래서 이율이나 세금 혜택이 높지만 7년간 납입해야 하는 ‘장기주택마련저축’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월급이라는 마약을 끊지 못해 늘 마음 한켠에 품은 ‘일탈’이 미뤄지고 있다. 그로 인한 갈등이 지속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해 나는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명으로 회사를 생계의 수단이 아닌, 탄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또 다른 학교라고 생각하기로 말이다. (가끔 그 결심이 흔들릴 때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제도를 탓하는 일은 논외로 치더라도, 학교에는 선생님이 있기 마련. 회사라는 학교에도 나에게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고 성장을 위한 동기를 부여해줄 선생님, 이른바 ‘멘토(Mentor)’가 필요하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져 인력의 들고 낢이 잦고 비정규직이라는 단기·임시 인력의 비율이 높아진 최근의 기업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멘토-멘티(Mantee)’ 관계이고 그렇기에 이러한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오히려 높아진 듯하다.

주위에는 출중한 능력과 높은 인격을 가진 분들이 많지만 아직 누군가를 멘토로 삼지도, 누군가의 멘티가 되지도 못했다. 멘토-멘티의 관계는 회사 내에서 경험을 전수해 효율적인 업무를 해나가는 것을 넘는다. 보다 넓은 삶의 전반 영역에 있어서 고민과 조언을 나눌 수 있는 정서적으로도 친밀한 관계여야 한다. 멘티가 멘토로부터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닌, 멘토 역시 멘티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호적인 관계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상대를 만나기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닐 테다.

멘토 만큼 만나기 어려운 상대가 바로 애인이다. 경제적 안정과 노화의 시작이 맞물려 외모 가꾸기가 정점에 달하는 이십대 후반의 여성으로 연차가 쌓일수록 조직의 기대수준 역시 높아져 동호회활동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지 오래. 이러니 어쩌다 가끔 하는 소개팅이 이성을 만날 기회의 전부인데, 연애상대를 찾고자 하는 생면부지의 남남이 서로에 대한 최소의 정보만을 가지고 밑도 끝도 없이 마주하게 되는 소개팅은 절차의 간소함 때문에 흔하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성공확률이 매우 낮은 만남의 형태이다.

여기 비록 결국에는 둘 다 잃긴 했지만 한 때나마 멘토와 애인을 둘 다 가졌던 행운의 여인, 혜원 신윤복을 소개한다. 조선 후기의 화가 혜원 신윤복이 여자라는 설정에서 출발한 미인도는 남성의 외피를 한 여성이 사랑에 빠지면서 겪는 사건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화원 집안의 라이벌이자 스승인 단원 김홍도와의 복잡다단한 관계, 윤리 규범이 엄격했던 시대에 그 이면에 자리잡은 인간의 자유로움을 그리고픈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그린 영화다.

신윤정은 화가로서의 재능 없음을 탓해 자살한 오빠를 대신해 남장을 하고 신윤복이 돼 궁궐의 도화서(圖畵署)에 들어가 단원 김홍도의 제자가 된다. 김홍도는 훗날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설레게 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자신을 닮아가는 신윤복을 흐뭇하게, 때로는 엄격하게 지켜본다. 신윤복 역시 오빠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신을 내몬 부모에게서 받지 못하는 사랑과 보살핌을 김홍도에게 받으면서 스승뿐만이 아닌 아버지의 정을 함께 느낀다. 뛰어난 그림을 요구하는 이들 앞에서 자기 대신 제자에게 붓을 쥐어주는 데 망설임이 없는 스승의 마음이란, 잘 자란 자녀를 둔 부모나 뛰어난 멘티를 둔 멘토만이 가질 수 있는 든든함이다. 하나의 화선지를 앞에 두고 함께 그림을 완성하며 나란히 앉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모습은, 스승과 제자,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을 뛰어넘는 정신적 동반자 관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궁궐 안에서 고상한(?) 그림만을 그려온 신윤복은 일반 백성의 삶을 살피려는 임금의 바람으로 풍속화를 그리게 된다. 우연한 계기로 그림을 위한 외출에 강무와 동행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한다. 거울을 만들어 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강무는 윤복이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그 자신이 거울이 되어 사랑으로 윤복을 비추고, 어려서부터 일반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박탈당하고 포기했던 윤복은 그렇기에 오히려 자유롭게 강무와 사랑을 키워간다. 거울을 만들기 위해 벗은 발로 흙을 반죽하며 마주선 두 사람에게는 첫사랑의 풋풋한 수줍음과 강렬한 성적 긴장감이 동시에 흐른다.

마지막 장면, 단아한 여성의 한복을 입고 선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함께 강물에 띄워 보낸 글귀, ‘얇은 저고리 밑, 가슴 속 가득한 정을 붓 끝으로 전하노라’에는 그 대상이 생략돼 있다. 아마도 그것은, 그림을 통해 자아를 완성하려는 한명의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주었던 김홍도와 사랑을 통해 행복을 경험하려는 한명의 여성에게 동반자가 되어 주었던 강무, 둘 다일 것이다. 멘토와 애인, 둘 중 하나도 갖지 못한 외로운 나에게 둘 다 가졌던 여인 신윤복은 질투와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서는 찾아지지 않는 법.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멘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나를 단련하는 동시에 부지런히 지인들에게 소개팅을 부탁한다. 멘토와 애인이 꼭 다른 사람이란 법도 없으니 살다 보면 서로에게 둘 다가 되어줄 수 있는 인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CEO ENERGY 제1호 게재>
저작권자 © 에너지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