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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디 간 거니?

엄마는 어디 간 거니?

  • 기자명 이윤경 영화칼럼리스트
  • 입력 2010.08.0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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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TALK 과속스캔들


지난해는 극장가가 ‘기근의 해’였다. 2008년 11월까지 집계한 어느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국 관객수가 작년에 비해 1천 만 명 가까이 줄었고, 100만 영화 편수도 2007년의 45편에 비해 38편에 그쳤다. 지난달 극장가는 아쉬웠던 2008년을 뒤로 하고 내년이나 좀 기대해보자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터졌다. 영화 ‘과속스캔들’이 관객과 평단의 고른 지지 속에 누적관객 20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서른 여섯 살 아빠, 스물 두 살 딸, 여섯 살 손자’라는 황당한 설정에 스타라기보다는 옆집 오빠 같은 차태현을 제외하고는 무명에 가까운 출연진. 과속스캔들이라니, 제목도 어찌나 후진지, 살짝 짜증까지 났더랬다. 그런데 개봉 전 몇 차례 진행된 시사회에서부터 입소문이 시작되더니 연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별로 없었는데, 중고등학교 겨울방학과 연말이라는 개봉시기도 잘 탄 것 같다.

영화 보는 안목을 믿을만한 주변 몇몇 지인들의 강추로 보고 싶은 수많은 영화를 뒤로하고 과속스캔들을 선택했다. 여섯 살 손자 역 아역배우의 능청스러우면서도 과하지 않은 연기가 어찌나 귀여운지 영화를 보는 내내 웃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아마도 그건’과 같은 내가 좋아하는 가요를 영화에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혹자는, 이 영화를 한국의 ‘어바웃 어 보이’라고 치켜세웠다. 부족한 것 없이 부유한 환경 속에서 독야청청 화려한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던 한 남자가 낯선 이들을 만나 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철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만 놓고 보자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겠다 싶었다.
그런데 영화관을 나서면서 나는 어딘지 석연찮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다들 좋다고 칭찬하고, 나 역시 즐겁게 영화를 봤는데 왜 이런 걸까? 그건 웃으며 영화를 보는 동안 문득문득 뇌리에 스치던 몇 가지 의문 때문이었다.

남현수(차태현)의 첫사랑이자 황정남(박보영)의 어머니인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계산해보자면 갓 스무 살에 옆집 중3 소년의 아이를 임신하고, 대중매체를 통해 아이돌 그룹을 거쳐 라디오DJ로 성장해 가는 ‘애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이의 존재를 말도 않은 채 살아온 그녀 말이다. 피는 못 속인다고, 딸은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나이인 열여섯에 미혼모가 되었으니, 그녀 팔자 참으로 기구하다. 그녀는 왜 갑자기 딸에게 아버지의 신원을 밝힌 것일까? 왜 황정남은 어머니 없이 천애 고아라도 된 것 마냥 남현수의 집에 눌러앉은 것일까?
남현수는 왜 과거의 첫사랑을 회상만 하고 지금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 걸까? 아무리 뭘 몰랐을 때 저지른 일이고 20년이 지난 후 그 결과(?)를 알게 됐다지만, 어떻게 그리 쉽게 손자의 유치원 선생님과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걸까? 우여곡절 끝에 딸과 손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면, 그들을 있게 한 첫사랑 그녀에 대해 최소한 안부 정도는 물어야 하는 것 아닐까?

황정남은 왜 아이 아버지에게 아들이 6살이 될 때까지 그 존재를 말하지 않은 걸까? 엄마 닮아서? 물론 영화상에서 아이 아버지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엔 과도하게 찌질하게 그려지긴 하지만, 찌질한 남자의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여자 혼자 책임져야 하는 것인가? 미혼모도 하고 싶은 것 많다, 던 그녀는 왜 60년대 신파 영화의 주인공처럼 국밥집에서 숙식을 해결해가며 억척 어멈을 자처하는 것일까.
영화는 허구이고, 내용이 재미있으면 너무나 현실적인 의문들은 배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영화가 판타지가 아닌 이상 현실에 발 딛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면서 위의 의문에 어떤 단서도 없는 것은 ‘너무 심각해지기 싫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홀로 사는 싱글남에게 아침밥을 차려주고 유치원 선생님과의 연애를 주선해주는 등 몇 번의 재미난 에피소드만으로 영화 속 그들은 손쉽게 가족이 됐다. 물론 위기로 치달은 몇 번의 갈등도 있었지만, 관계의 겉면만 핥아 절실히 다가오지 않고 그저 영화적 장치로 보인다. 나는 과속스캔들이 재미있는 영화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좋은 영화’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다.

<CEO ENERGY 제2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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