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현장 르포] 유사석유 제조 조직을 검거하다

[현장 르포] 유사석유 제조 조직을 검거하다

  • 기자명 이권진 기자
  • 입력 2009.09.30 12:09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9월 24일 오후 2시 30분. 기업형 유사석유 제조장으로 의심되는 범죄조직이 검거됐다. 이날 수갑을 찬 사장은 조직의 바지사장이었다. 경찰은 이와 같은 불법제조시설이 전국에 퍼져있다고 추정한다. 원료수급에서 유통단계까지 경찰은 구체적인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현재까지 도주 중인 우두머리와 경찰의 대결구도는 5:5로 보인다.

4명의 용의자가 검거됐다. 순식간에 이뤄졌다. 경기도 화성시 제조공장 단지가 있는 한 창고에서다. 불법 석유제조 용의자 4명은 전부 20대 중반이었다. 자신을 사장이라고 밝힌 유아무개 씨는 1982년생이다. 기업형 유사석유 제조 조직의 우두머리로 보기에 너무 젊었다. 그는 ‘바지사장’으로 추정됐다.

아마도 바지사장이 모든 혐의를 인정하고 구속될 것이다. 그리고 바지사장의 뒤를 봐주는 ‘진짜 사장’은 유능한 변호사를 대줄 것이다. 혐의는 기존보다 가벼워지고 출소일은 빨라진다. 다시 유사석유 제조장에 불이 밝혀진다. 악질적인 그들의 수법이다. 이날 경찰이 꼭 쳐야 할 목은 거기에 없었다.

▲ 솔벤트가 약 5000리터 담긴 통 위에 올라가 있는 검사원.

사건이 있던 날 오전 9시. 기자는 수원남부경찰서에서 석유관리원 검사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서 건물을 제외한 부지는 모두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차량 하나 빠져나오는데 2, 3대의 차를 밀쳐내야 했다. 경찰서의 특성상 오고가는 차량이 많다는 것이다.

늦게 오는 애인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정문을 바라보다가 잠시 화장실을 들렸다. 거기에는 밤새 야근을 한 형사들이 세면대에 큰 몸집을 의지해 머리를 감고 세안을 했다. 화장실 구석에는 급탕온수기가 구비돼 있었다. 경찰서의 밤낮 없는 24시간을 낡은 급탕온수기가 끓여내는 것 같았다.

이번 화성시 유사석유 제조장 단속에는 지능수사팀 형사 3명과 석유관리원 수도권지사 검사원 2명이 붙었다. 사실 제조장 단속은 취재가 애매한 사항이다. 제조장 단속 취재는 석유관리원 검사팀의 시간과 담당 형사들의 시간을 함께 조율해야 한다. 게다가 제조장 단속을 나간다고 해서 용의자들을 검거하는 일도 확신할 수 없다. 이래저래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애가 타는 쪽은 형사들일 것이다. 그들은 사전 준비 기간이 상당하다. 불법 현장을 포착했더라도 당장 수색영장을 받아 출동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용의자를 확인해야 한다. 바로 그 용의자가 사건의 중심으로 걸어오는 그 시간, 우리는 거기에 있어야 했다.

지능수사팀에서 간단한 사전 회의가 열렸다. 용의자들이 유사석유를 제조한다는 창고와 주변 지형이 흰 종이 위에 그려졌다. 3개의 창고 가운데 안쪽 깊숙이 들어가 있는 창고에 동그라미가 여러 번 그어졌다. 이번 사건을 기획한 것으로 보이는 노아무개 형사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기업형 조직인 것 같아요. 예전에 유사석유를 실은 트럭이 폭발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그 업체 사장이에요. 여러 개 사업장 두고 수시로 작업이 있을 때마다 돌아다니고 있어요. 악질적인 놈이에요.” 그가 기자의 종아리만한 팔뚝을 흔들며 설명했다. 손에 쥔 모나미 볼펜 153이 따라서 흔들렸다. 사진 여러 장을 보여줬는데 창고는 평온한 시골길에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모나미 153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입구에 셔터가 내려져 있으면 원료를 받아 작업을 하고 있는 거예요. 반대로 올라가 있으면 기다리는 중이고요. 사장이 탄 에쿠스가 들어가면 셔터가 내려갈 겁니다.” 여기서 말하는 원료는 유사석유를 제조하기 위해 필요한 화학용품이다. 바로 톨루엔과 솔벤트 그리고 메탄올을 지칭한다.

이 세 가지는 따로 있을 때는 각각 페인트 등 화학용품을 만드는 착한 원료지만 같이 있을 때는 악마의 연료로 둔갑한다. 흔히 한적한 도로변을 달리다 만나는 길거리 유사휘발유가 바로 이들을 짬뽕해 파는 것이다.

▲ 검사원들이 압수된 물량의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양이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가던 10시. 우리는 단속 현장에서 불과 400미터 떨어진 ‘OO순대국’과 ‘OO마트’ 사이의 주차장에 있었다. 창고의 셔터는 입을 열고 있었다. 유사석유 원료를 받아먹을 요량으로. 대게의 유사석유 제조장은 새벽에 주로 작업을 한다. 새벽에 물량을 만들어 아침에 출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특이하게도 아침 6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이뤄진다. 오히려 낮 시간대를 이용해 단속망을 피해보려는 수법이다. 

잠복이 시작됐다. 입을 닫고 창고가 분주해질 때까지, 계산기에 손가락을 튕기는 사장이 에쿠스를 타고 바로 눈앞을 지나칠 때까지 말이다. 전날 야근과 강남 술집에서 특근을 한 기자에게 잠복은 ‘복된 잠’으로 들렸다. 석유관리원 차량 뒷자리에 앉아 노곤한 가을 햇살을 만지작거렸다. 그 시간 형사팀의 봉고차는 단속 현장 주변을 수색하며 진입로와 도주 경로를 다시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수십 번의 사전답사로 눈을 감아도 머릿속을 그릴 수 있는 지형일 것이다.

공영윤 검사팀 대리가 적막을 깨고 말을 붙였다. “예전 평택공장 건은 정말 심했어요. 새벽에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죠. 형사들은 비를 맞아가며 산 속에서 쌍안경으로 보고 저희도 축축하게 젖었죠.” 김희균 과장도 말을 거든다. “초창기 유사석유 제조는 조직폭력배에서 가담을 많이 했죠. 그래서 경찰들은 보호장구를 항상 착용하고 다녔어요. 몽둥이를 휘두르는데 장사가 어디 있겠어요.”

2시간의 잠복이 이어졌다. 고양이가 몸을 길게 쭉 빼며 하품을 했다. 이건 좀 불편하다 싶은 고양이 같은 감정이 허리를 타고 전해졌다. 어디까지나 잠복은 업무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긴장감을 조끼처럼 껴입고 앉다보니, 말수는 줄어들고 피로감을 늘어졌다. 단속 현장을 덮친 오후 2시 30분까지, 차량에는 두 통의 스팸전화가 왔고 막대 아이스크림 세 개가 습관적으로 허공을 갈랐으며 두 번의 기지개로 졸음이 잠시 차창 밖으로 나갔다가 황급히 돌아왔다.

그때였다. 빨간 티셔츠가 나타났다. 30분 전 창고 방향으로 천천히 올라갔던 남자였다. 다시 내려오는 것이다. 순간 검사원들이 몸을 낮게 움츠렸다. 용의자들이 작업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주변을 감시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빨간 티셔츠는 이쪽을 의식하지 않은 채 멀어져갔다.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똑! 똑!’ 노아무개 형사가 귀신처럼 나타나 문을 두들겼다. “아무래도 지금 들어가야겠어요. 사장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것 같은데, 일단 작업이 시작됐으니 검거를 하려고 합니다.” 약 5시간의 잠복을 가르는 가위 같은 말이었다. 그 뒤로 두 가지를 알려왔다. 형사팀이 들어간 뒤 1, 2분 뒤에 차를 몰고 창고 끝까지 들어올 것. 안전이 확인되면 차에 내려 물량 채취를 시작할 것. 그리고 형사팀의 봉고차를 타고 창고 쪽으로 사라졌다.

▲ 검사원들이 압수된 물량의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고양이가 쥐를 잡던 오후 2시 30분. 셔터가 개방돼 있었고 검사원과 기자는 창고에 당도했다. 창고 문이 위로 스르르 개방되고 있었다. 창고 옆에 붙은 작은 콘테이너 박스 문에는 형사팀 반장이 전자봉을 들고 서 있었다. 그 콘테이너 박스에 용의자 4명이 수갑을 찬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검사원은 빠르게 현장파악에 들어갔다. 다른 형사들은 창고를 캠코더로 찍기도 하고, 창고 주변과 용의자들의 차량을 수색했다. 마치 정해진 배역을 능숙하게 연기하는 배우들 같았다.

창고에는 1만 리터짜리 파란색 통이 사람 키의 세 배 크기로 서 있었다. 거기에는 솔벤트(용재)가 반 이상 찰랑 거렸다. 김희균 과장이 꼭대기에 올라가 솔벤트를 채취했다. 공영윤 대리는 석유관리원 로고가 찍힌 1.5리터 시료통을 들고 창고에 들어왔다. 한쪽에는 일반 페인트 통의 용기가 500개 정도 쌓여 있었다. 솔벤트다. 또 다른 편에도 그런 통들이 색깔을 달리해 500통 가까이 있었다. 톨루엔으로 의심되는 원료였다. 솔벤트와 톨루엔을 따로 18리터 페인트 통에 담는 ‘투 캔’방식인 것이다.

캔 방식은 ‘원 캔’ 방식과 달리 혼합된 완제품을 판매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솔벤트와 톨루엔을 붓는다. 최근 들어 많이 시도되고 있는 범죄 행위다. 이는 운송과 판매를 할 때 적발이 되더라도 각각 화학용품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기 쉽기 때문이다. 꼼수인 셈이다.

창고 뒤에는 200리터 드럼통을 40개나 가득 실고 있는 화물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검사팀 공영윤 대리와 그 위에 올라가 시료를 채취했다.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시료 채취가 끝나자 바지사장으로 추정되는 20대 남자에게 압수된 물량을 확인받았다. 사장은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차근히 진술했다.

“솔벤, 톨루, 메탄올 6:2:2 정도로 혼합해요. 한 달 정도 작업했습니다.” 여기서 혼합비율은 현장에서 범법자들의 ‘손맛’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에는 톨루엔 가격이 치솟아 다른 원료의 비율을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됐든 유사휘발유 자체는 차량과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발암물질을 배출하는 톨루엔, 차량의 연료계통을 부식시키는 메탄올은 지금 이 시간에도 버젓이 도로변에서 은밀하게 유통되고 있다.

▲ 용의자(가운데)가 시료채취 확인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이날 압수된 물량은 3만 리터가 넘었다. 이 물량은 한국환경자원공사에서 따로 경기도 안성에다 보관을 하게 된다. 폐기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면 정유회사로 보내지게 된다. 다시 재가공해야 하기 때문에 연료의 가치가 떨어진다. 정유회사가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에 김희균 과장이 설명했다.

“고유가가 지속되다보니 기업형으로 하는 제조장이 늘어날 가능성이 많아요. 지금 투 캔 방식은 대구, 경북 지역에 있는 몇몇 업체 들이 의심이 가요. 페인트 회사로 위장해서 시장에 공급하고 있는 규모 있는 불법 제조장이죠.”

다시 수원남부경찰서로 돌아와 문서작업과 형사팀에 넘겨줄 사진을 정리했다. 용의자들의 작업장이 160컷 정도 담겨 있었다. 사진 중간 중간 형사팀과 검사팀의 얼굴이 나타났다. 잠복 때에 얼핏 봤던 나른한 고양이는 사라졌다. 세심한 눈매에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 종아리만한 팔뚝으로 커피잔을 건네던 형사의 순한 얼굴빛도, 검사원들의 노곤한 옆모습도 카메라 밖으로 달아났다.

카메라는 그 시간 범죄 현장에 있던 모든 것을 수집했다. 심지어 창고에 붙어 있는 화장실 비누까지. 하지만 정작 수갑을 채우지 못한 사장은 카메라 밖에 있었다. 현재까지 잘 숨죽여 있는 사장과 경찰의 대결구도는 5:5로 보인다. 언제가 그는, 늘 그래왔듯이 사건의 중심으로 걸어들어 올 것이다. 거기 서슬 퍼런 눈이 현장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원료수급에서 유통단계까지 경찰은 구체적인 증거를 하나하나 모으고 있다. 이제 검거는 시간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상기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 <CEO ENERGY>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에너지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