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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학공업 선구자, 에너지업계 큰별지다

중화학공업 선구자, 에너지업계 큰별지다

  • 기자명 황무선 기자
  • 입력 2012.11.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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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산업에 바친 ‘열정 60년’
‘재계 외교관’ 구평회 E1 명예회장 별세
묵묵히 일하고 깨끗이 떠나는 진정한 신사

“진정한 신사이고 참된 비전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시작이 아무리 미천해도 못 이룰 것은 없다는 신념, 성공을 위해서는 10년 후를 내다 볼 수 있는 명확한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그와의 만남을 통해 배웠습니다.”
외국 기업인중 대표적 한국통으로 통하는 보잉코리아 윌리엄 오벌린 사장이 한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한국 기업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구평회 E1 명예회장을 꼽았다. 그리고 그를 진정한 신사이자 참된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재계의 외교관’ 송강(宋綱) 구평회 E1 명예회장이 지난 10월 20일 성남 자택에서 타계했다. 향년 86세.
구 회장은 세계를 무대로 한국의 세계화를 위해 기여해 왔다. 그는 세상과 세상을 이어주는 소통구이자,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한 LG의 창업과 성장에 중심 역할을 해온 개척자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다.


한·일 월드컵 유치 일등공신


2002년 한반도를 뜨겁게 달궜던 한·일 월드컵. 사실 구평회 회장의 숨은 공로가 없었다면 꿈같은 ‘한국의 4강 신화’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붉은 악마’들의 멋진 응원도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평생을 쌓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성사시킨 장본인이다.

유치위원장을 맡았던 1994년 당시 국제 축구계의 여론은 이미 일본의 단독 개최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브라질 출신 주앙 아벨란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공동개최)그런 얘기는 내 시체 위에서 하라”고 말할 정도로 완고한 입장이었다.

이때 구 회장은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같은 유력 인사들을 만나 공동 개최 필요성을 강력히 설득했다.

또 일본의 많은 기업인들에게 양국의 우호관계를 위해서는 한·일 월드컵의 공동개최가 반드시 성사돼야 할 일임을 역설했다. 결국 이러한 숨은 노력들이 결실로 이어져 국제 사회와 체육계를 움직였다.

월드컵 유치결정 후 청와대 만찬에서의 일화를 통해 그의 소신과 품성을 엿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구 회장의 월드컵 유치공로를 말할 때, 그는 “내 역할은 끝났다. 앞으로 월드컵 관련 행사에서는 내 이름을 거론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룬 것을 후임자에게 전해준 다음에는 바로 잊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철학에 따라 그는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러한 이유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루고도 무대 뒤로 숨어버리는 분, 마음을 비운 사람, 내가 아는 회장님의 진면목이다”라고 말했다.


오너를 넘어선, 유능한 전문경영인

구평회 E1 명예회장은 1926년 6월 경남 진주시에서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넷째 동생으로 태어났다.
1945년 진주 공립중학교를 나온 뒤 1951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락희화학(현 LG화학)에 입사해 기업인으로서의 첫발을 디뎠다.

뛰어난 교섭능력과 유창한 외국어 실력으로 자연스럽게 락희화학 초창기 대외 창구 역할을 도맡으며 기업발전의 초석을 닦았다.

또 그는 1954년 민간기업 최초 해외주재원으로서 락희화학 뉴욕주재원으로 근무하며 한국 최초 치약인 ‘럭키치약’을 탄생시킨 주역이었다. 입사 1년차 때 한국 청년회의소 대표 자격으로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 대회에 참가한 후 그는 ‘해외에서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곧장 미국 뉴욕으로 날아갔다.

락희화학의 첫 번째 해외주재원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해외 기업인들과 교류하며 치약 제조 샘플을 얻어 국내 최초 치약인 럭키치약을 개발하는데 힘을 보탰다. 이를 계기로 락희화학은 플라스틱, 석유화학산업 분야까지 안정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또 해외 주재원 생활 중 플라스틱이 원유에서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듣고 1954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누구보다 먼저 정유사업 진출을 역설했다. 해외합작시에도 그의 탁월한 외국어 실력과 해외근무 경험이 큰 힘이됐다. 구 회장은 1967년 미국 칼텍스와 합작을 통해 민간 석유화학공업의 효시인 ‘호남정유(현 GS칼텍스)’를 설립해 한국 중화학공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또 1984년에는 최초의 LPG 수입사인 여수에너지(현 E1)를 설립했다.

이후 구 회장은 럭키금성상사(LG상사)와 럭키금성경제연구원 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기업사에 수많은 족적을 남겼다. 다방면에 능통했던 그를 평가할 때 재계에선 “오너 경영인이지만 오히려 ‘전문경영인’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묵묵히 일하고 깨끗이 떠난다’

구평회 명예회장은 재계를 대표하는 국제통으로 ‘재계의 외교관’ 혹은 한국의 대표적 ‘Business Statesman’으로 불린다. 구 회장은 재계 원로로는 보기 드문 탁월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한 인물이었다.

한국인 최초로 PBEC(태평양 경제협의회) 국제회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한미경제협의회 회장, 무역협회장 등 30여 개가 넘는 굵직한 직함을 가지고 국제 민간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역협회장 시절 1조 2000억 원 규모의 COEX(컨벤션 센터 및 지하쇼핑몰 등) 건립을 주도해 협회의 재정자립과 무역인프라 구축 및 새로운 문화공간을 성공적으로 조성한 것 또한 그의 대표적인 업적이다.

그럼에도 구 명예회장은 ‘묵묵히 일하고 깨끗이 떠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소박한 성품 때문에 업적에 비해 대중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본인이 설립한 호남정유가 1987년 완전히 자리를 잡자, 회사를 떠나 럭키금성상사(현 LG상사) 회장직을 맡은 것도 같은 이유다.

그는 2001년부터는 한미협회장으로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2003년 LS그룹이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뒤 E1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서도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14층 집무실에는 큰 지구의를 놓고 세계 경영을 구상하며 한국과 미국의 관계 증진에 힘썼다.

팔순의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최근까지도 한·미간 우호협력 관계의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해왔고, 대미 민간 외교의 주요 채널로 활약했다. 그는 2010년 한·미 협회가 수여하는 ‘한·미 우호상’을 받았다.
구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주역인 구태회(LS전선 명예회장), 고 구두회(전 예스코 명예회장) 형제와 함께 LG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통해 LS그룹을 출범시켰다.

LG그룹 지분에 연연하지 않고 잡음 없이 계열분리를 이뤄내 구씨 집안 어른으로서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계열분리 이후에는 2세들에게 회사 경영을 맡겼다. 구자열 LS전선 회장(장남), 구자용 (주)E1 회장(차남), 구자균 LS산전 부회장(삼남)이 그룹 주요 계열사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재계 긴 조문행렬로 고인 추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23일 LG 창업 고문인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직접 조문했다. 이날 유족 및 기업 관계자 등과 만나 고인이 기업가로서 평생 이룩한 업적을 기렸다.

앞서 지난 20일에도 빈소에 조화를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또 고인의 국권 신장 등에 대한 공로를 기려 수교훈장 광화장을 추서했다.

조문을 마치고 이 대통령은 방명록에 “한국 경제계에 큰 역할을 하신 故 구평회 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서울아산병원에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첫날은 구자경 LG 명예회장과 구자엽 LS산전 회장, 남덕우 전 국무총리, 이희범 STX중공업건설 회장,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이 조문했다. 구자용 E1 회장의 사돈인 홍석조 보광그룹 회장과 권재진 법무부장관도 빈소를 찾았다.

지난 21일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오전 조문을 다녀갔으며,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도 뒤를 이었다.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김윤 삼양그룹 회장, 어윤대 KB회장, 이헌재 전 부총리, 구자명 LS니꼬동제련 부회장, 사공일 전 무역협회장, 구자학 아워홈 회장도 빈소를 방문했다.


*상기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CEO ENERGY>2012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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