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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석유는 어디로 흘러가나? (III)

이라크석유는 어디로 흘러가나? (III)

  • 기자명 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 입력 2013.02.0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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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길에 요르단을 둘러보다

2주간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들어서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바그다드로 가든 길은 답답하였으나 대상 광구도 결정되고 의향서도 받아내 헛걸음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두 가지가 뇌리에 스친다. 하나는 국내 컨소시엄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다음은 일이 성사되려면 이 머나먼 길을 얼마나 드나들어야 하는가? 였다.

바그다드 라시드 호텔에서 꼭두새벽에 아침을 겨우 얻어먹고 출발하였다. 한 두 시간 달리니 지평선에 해가 머리를 조금 내민다. 조금 더 있으니 반쯤 지평선에 올라온 해는 사막을 온통 불게 물 드린다. 해는 끝없이 펼쳐진 사막의 모래를 달구려고 또다시 떠오르면서 그 서막을 올리고 있다. 이라크 석유개발도 이 서막과 같이 서서히 떠오르다가 작열하는 태양으로 변해 만물에 비추며 광명을 주는 것과 같이 되기를 기대 해보았다. 13시간 넘게 걸려 요르단 암만에 도착해 하이야트 호텔에 투숙했다.

당시 요르단 훗세인왕을 기준으로 몇 대만 거슬러 올라가면 이라크와는 사촌간이 된다. 그래서 요르단의 영토가 이라크 국경 쪽으로 직사각형으로 쑥 들어가 있는데 이라크가 요르단에 할애해 주었다고들 한다.

요르단은 참 구경거리가 많은 나라다. 역사적인 도시로 페트라(PETRA), 제라쉬(Jerash), 마다바, 느보산 등이 있으며, 사해, 폭포온천, 모세의 샘 등 신기한 자연현상도 있다.

우선 손꼽히는 것은 단연 페트라 이다. 페트라는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 틈새의 좁고 깊은 골짜기를 지나 나오는 헬레니즘 양식의 웅대한 건물이다. 건물 정면은 암벽을 파서 만들었고, 암벽을 파서 방도 만들었다. 페트라는 대부분의 건물들을 이와 같이 암벽을 파서 만들었으며, 이곳에는 극장과 온수 목욕탕, 그리고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현대 도시 못지않다. 나바티안이라고 불리는 민족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실크로드의 길목으로 수많은 대상들이 들러 가는 상업의 요충지로 한때 크게 번창했었으나, 대상무역의 쇠퇴와 함께 폐허가 되어 여러 세기 동안 발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1812년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 하르트라는 스위스의 한 젊은 탐험가가 이 유적을 발견하였다. 현대의 수수께끼 유적의 하나로 남아 있는 이곳은, 이집트의 피라미드과 더불어 고대 세계 7대불가사의 하나이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 마지막 성배’를 이곳에서 찍었다.

페트라의 출입구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주 좁기 때문에 서기 106년 로마군이 여기를 공략하는데 시일도 오래 걸렸을 뿐만 아니라 그 주변은 산으로 철옹성 같이 되어 있어 상당한 희생을 치렀다고 한다. 그리고 아쉬운 것은 이곳을 건설한 나바티안족은 거의 멸종되었으며 역사 기록조차 남은 것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그들의 유물은 계속 발견되고 있다. 페트라 안쪽으로 1km 이상 들어가면 파라오의 보물창고라는 뜻의 ‘알카즈네’라는 건축물이 있다. 정면 전체를 바위 위에 조각했다. 페트라는 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이다. 알카즈네가 ‘파라오의 보물’이라는 뜻의 알카즈네라는 이름은 베드윈족들이 붙인 것이다. 베드윈족들은 조각상 뒤쪽으로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 때문에 알카즈에 위쪽의 조각상에는 사람들이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전투를 벌인 흔적인 총탄 자국이 있다.

느보산은 모세와 관계가 깊은 곳이다. 해발 835m의 느보산은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 기착지이다. 40년 동안의 광야에서의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는 이곳에서 가나안 땅을 조망하고 숨을 거두게 된다. 느보산은 성경의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과 동일한 장소로 히브리어로 ‘비스가’란 ‘꼭대기’라는 의미이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으로 진군해 들어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리 족속의 온 지경을 점령하고 이 지역에 머물러 살기를 원했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에게 요단 동편 지역을 분배해 주게 되는데 느보는 르우벤 지파에게 분배되었다. 기원전 9세기의 모압왕 메사의 비문에 의하면 느보읍은 그때까지도 이스라엘의 도시였다. 그런가 하면 성경은 느보가 모압의 도시였다는 보도를 남기고 있다.

느보산 모세 기념 교회 앞 공터 전망대에서 살펴보면 멀리 사해와 여리고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날이 맑은 날은 그 시야가 더 넓게 펼쳐져 예루살렘의 감람산 지역까지도 식별이 가능하다. 이곳 정원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조각가 지오바니 판토니의 작품이 세워져 있다. 이것은 모세가 시내광야에서 뱀에 물린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놋뱀과, 인류 구원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복합시킨 의미 깊은 작품으로 모세를 거역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로 인하여 불 뱀에 물려 죽은 사건의 상징물이다. 시야가 교회 왼쪽으로 있는 둥근 언덕은 브올의 아들 발락이 발람에서 모압 평지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을 향하여 저주를 퍼부어 달라고 요청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사해에서 마다바로 가는 길에 구불구불 오르막길을 올라 다시 계곡으로 내려가면 마인온천이 나온다. 푸른 온천이라는 뜻인데 유황성분이 강하여 피부에 좋다. 이곳은 높이 50m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온천이다. 원천 원수가 높은 곳은 섭씨 60℃이며 보통45~50℃를 유지한다. 절벽에서 떨어지면서 조금 식기 때문에 온천하기에는 적당하다. 폭포 하부에 조그마한 동굴이 하나 있는데 웬만한 사우나 보다 뜨겁다. 필자는 이 폭포 온천을 맞으며 기공을 멋지게 한번 해보았다.

요르단은 석유도 없고 다른 자원도 없는데도 잘살고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남녀 특히 여자들이 더 잘 생겼다. 암만의 집들은 참으로 아름답게 지었다. 사암이기 때문에 돌을 마음대로 자르고 파서 취향대로 집을 짓는데 참으로 보기 좋은 그림 같다. 기후도 습도가 낮아 한여름에도 그늘은 시원한 편이다. 2일간의 관광을 마치고 요르단 항공을 탑승 귀국의 길에 올랐다. 한숨 자고 나니 환승지인 싱가포르 상공이다. 착륙준비에 부산하다. 여기서 저녁인지 아침인지 식사를 하고 다시 비행기에 올라 자료를 정리하였다. 김포공항에 도착했는지 안전벨트를 매라고 부산하다. 참으로 기나긴 여정으로 느껴진다. 그래도 광구를 확보 할 수 있다면 언제라도 떠나려고 한다.

할파야(Halfaya)광구와 한국컨소시엄

유전개발에 있어서 가채매장량이 5억 배럴이 넘으면 초대형 유전으로 분류되며 최근 이런 유전을 찾기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그런데 이라크 석유성과 개발 협의를 하려는 할파야 광구는 초대형 광구 보다 7~8배가 넘는다. 일단 국내 콘소시엄을 구성하는데 매장량크기 만으로도 큰 미끼가 된다. 그러나 미끼만 좋아도 소용이 없다. 낚싯대도 튼튼해야 되고 낚싯줄도 길고 질겨야 물린 고기를 육지까지 끌어 올리게 된다.

할파야 광구는 이라크 남동부 아마라(Amara)시에서 25km 동쪽 즉 이란 국경 근처에 위치한다. 광구 면적은400평방km 이며 기 발견 개발광구로서 물리탐사를 600L-km를 실시했고 탐사시추 5개 공을 굴착하여 4개 공에서 기름을 발견 했다. 이를 시행한 회사는 이탈리아 AGIP과 브라질 국영석유 PETROBRA 이다. 그리고 목표 층은 5개이며 최하부 층까지는 굴착을 못하였다. 그리고 원시매장량(땅속에 있는 원유 총량)은 167억 배럴이고 가채매장량(저유암의 성질에 따라 생산되는 량, 보통 자연 압력에 의한 생산량은 원시매장량의 20~25%이다.) 할파야 광구는 이라크 4대 광구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매장량만 가지고 사업 참여를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명분을 찾아야 한다.

첫째 사업성이다. 이라크는 석유 부존량이 1600억 배럴로서 세계 제 2 보유국이며, 석유생산비는 세계에서 가장 낮다. 뿐만 아니라 할파야 광구는 기 발견 광구이기 때문에 조기 생산이 가능하여 소요 자금을 자체에서 마련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성이 우수하다.

둘째는 참여 가능성이다. 유엔의 경제 제재로 영미계(英美系) 유명 국제석유회사는 정부의 반대로 이라크 후세인 정부와 협상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한국은 지금이 참여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셋째는 석유의 개발수입이다. 우리는 하루 160만 배럴(1994년 기준)을 소비 하면서 전량 단순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은 개발수입을 목표를 20%로 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해외 유전을 보유함으로써 석유수급에 안전판을 구축해야 한다.

이라크 석유성은 1차 접촉 후 첫째 초대형 유전인 할파야를 거론하면서 컨소시엄 구성을 요청하였고, 둘째 기술, 자본, 시장 등 위험부담을 분산시켜야 하며 셋째 아주 침체되어 있는 국내석유개발 업계 간의 상호협력을 촉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컨소시엄 구성에 착수했다.

우선 국영석유인 한국석유공사가 떠올랐다. 당시 석유공사는 석유 개발사업에 융자를 해주고 있기 때문에 일단 공사가 들어가면 융자 받는데 유리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술적인 문제도 유리하다. 당시 민간회사들은 석유공사의 참여 여부를 가지고 사업 참여 기준을 삼았다. 다음은 국내 최대 정유공장을 가동하는 SK를 참여토록 했다. 원유의 실수요자를 포함시킨다는 의미가 컸다. 끝으로 종합 상사인 삼성물산을 참여 시켰다. 요르단에 지사도 있고 이라크와는 무역을 한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을 고려했다. 물론 목적하는 바는 같지만 4개 회사가 이라크 광구를 확보하는데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 하면서 성공 할 수 있을까? 특히 석유업계에서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볼 것이다.
선정기준을 정리 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석유공사(국영석유회사): 국내외 공신력, 융자가
용이, 기술과 경험 보유
2) Sk에너지(정유회사): 국내 최대의 실 수요자, 중동
산유국과 거래
3) 삼성물산(종합상사): 풍부한 무역 경험, 세계시장의
인지도, 거대한 자금력

국내 공동조사 그룹 합의서를 작성하여 3개사에 송부하고 의향을 타진하였다. 국내컨소시엄을 구성하는데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필자가 이 3개사의 당시 사장과는 잘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석유공사와 SK는 전 직장이었으며 삼성물산 사장은 대학교 동기였다. 그런데 의외로 마지막 직장이었던 석유공사의 실무진들이 발목을 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물 안 개구리 신세인 석유공사 기술실에서 중동 지역의 구조를 잘 알지 못하고 마치 ‘산속의 참새가 대양을 보고 웅덩이가 끝이 없구나’ 하는 격이었다. 즉 이렇게 큰 유전이 어디 있겠는가 황당무계하다고 떠 벌렸다. 이로 인해 광구평가를 외부용역을 주어 두 번이나 실시했다. 겨우 설득을 시켜 우선 컨소시엄에 들어오도록 했다. 몇 차례의 협의를 거쳐 합의를 이끌어 내어 4개사가 서명을 하였다. 그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참여 대상광구의 선정
2) 참여 대상광구의 기술평가 및 경제성 검토
3) 참여조건의 협의 및 조광계약협상 등을 공동으로 수행하여 참여광구에 대한 탐사 및 개발권획득을 그 목적으로 했다.
4) 지분구성은 회사 마다 25%로 하고 한얼상사(필자가 대표이사임.) 간사회사가 되며, 이라크 정부당국과의 공식적인 대표가 되며, 컨소시엄 운영위원회의 의장직을 맡았다.

마침내 이라크 석유사업을 위한 국내 컨소시엄이 결성되어 할파야 광구개발을 위한 장정에 오르게 되었다.

* 상기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CEO ENERGY>2013년 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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