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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석유는 어디로 흘러가나 (V)

이라크 석유는 어디로 흘러가나 (V)

  • 기자명 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 입력 2013.04.0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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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계약과정

사담 후세인 체제 하에서 광구계약 체결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6단계의 계약과정을 거쳐 확정, 발효됐다. 우선 한국 컨소시엄과 석유성 실무진간에 축조심의를 거쳐 장관에게 보고되고, 장관은 검토·수정하여 석유성 안을 작성, 각의에 상정한다. 각의에서는 부처별 의견을 수렴하여 최종적인 정부안이 마련된다. 이 정부안은 혁명위원회에 회부되어 주로 정치적 측면에서 다루어진 후 의회에 상정, 표결에 부친다. 의회에서 가결되면 대통령 후세인이 선포, 광구계약이 종료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견 복잡한 것처럼 보이나 실무상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실제로는 석유성 장관이 제일 중요했다. 이라크의 석유성 장관쯤 되면 이미 후세인의 손발이나 다름없으며 일국의 돈줄은 쥐고 있으니 발언권이 상당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은 혁명위원회. 이 위원회는 정치적 측면을 주로 다루는데 그 목적에 따라 찬반을 쉽게 뒤바꿀 수가 있었다. 그리고 경제성 측면에서도 정치적으로 과도하게 요구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물론 각 단계마다 후세인의 입김이 강하고 의회가 최종 결의했다고 하여도 위원회는 필요하다면 그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여 새로운 요구를 할 수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유엔의 경제 제재로 인하여 광구계약이 체결되어도 작업에 착수할 수 없었다. 이유는 석유성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에서 실무협상단계에서 온갖 무리한 요구를 해왔기 때문이다.

석유개발을 위한 이라크 첫 방문은 1994년 6월 이루어졌다. 2년 후인 1996년 3월에 계약서 초안이 작성되었으나, 수정 보완과정을 거쳐 10개월 후인 1997년 1월에서야 대부분 실무 합의가 이루어진 기본합의서에 서명(Initial signing)을 할 수 있었다. 계약명은 ‘할파야 광구 개발 및 생산 계약(DEVELOPMENT AND PRODUCTION CONTRACT RELATING TO THE HALFAYA FIELD)’이다. 그 외 1억 달러 상당의 물자 지원에 관한 계약은 무역성과 기본적인 합의만 해 놓고 본 계약이 체결되는 시점에서 서명하기로 하였다.

계약체결 후 석유성은 경제 제재가 끝나면 즉시 사업에 착수 할 수 있도록 광구개발에 필요한 자제를 사전에 주문하라고 요구해 왔다. 특히 생산기간이 오래 걸리는 물품은 그 품목을 주면서 생산자와 계약을 하라고 지시했다. 새로 부임한 알 라시드 석유성 장관은 아주 강경했다. 이 사람은 영국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한 엔지니어로서 오랜 기간 동안 국방장관을 지내면서 이라크를 무장시키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의 부인도 유명한 화학자로서 독가스 전문가인데 쿠르드족에 독가스를 살포하여 크나큰 인명피해를 주었다. 그래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주요 전범으로 체포되어 행방이 묘연하다.

서명 후에도 문제는 여기저기 도사리고 있었다. 우선 OPEC의 감산조치를 단행하는 경우 할파야 유전에서의 생산량, 생산기간 등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또 감산기간이 1년을 넘지 않으면 국제석유회사가 보상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거나, 1년이 넘으면 이라크 정부가 일부 보상을 해야 한다는 등의 이견이었다. 투자비회수 기간이 길어지고 수익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노력하였으나, 결국 석유성 안을 받아 드릴 수 밖에 없었다. 이라크는 OPEC 창설 회원이고 외국석유회사와 수없이 협상을 해본 경험이 있기에 그들을 설득시키기 어려웠다. 다만 우리로서는 이라크가 어려운 여건에 놓인 현실을 잘 이용하는 수 밖에 없었다.

다음은 원유 가격을 어떻게 책정하여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이었다. 우리는 국제원유가 결정 방식을 고집해 보았으나 석유성은 이라크 국가석유판매기구(Iraqi State Oil Marketing Organization: SOMO)도 국제적인 원유 판매회사이니 이 가격을 적용하자는 의견이었다. 유가는 대개 원유의 유황 함량과 API에 따라 결정되는바 이라크 원유가 시장에 다시 나오게 되면 일반시세보다 다소 낮을 것으로 판단되어 석유성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수익성이다. 되도록 단기간에 투자비를 회수하고 수익성을 높여야 하는데 우리 뜻대로 될 리가 없었다. 매년 생산량의 50%를 투자비로 회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석유성과 계약자 간에 나누었다. 그래서 생산물 분배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마주눈 광구를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는 우리에게 광구의 분배율은 한자리여야 한다고 언질을 줬다. 그들은 마주눈 광구의 분배율로 8%를 제시하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주눈 광구는 그야말로 초초대형 광구로 일산 100만 배럴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보통 석유광구는 파고 내려가면서 목표층은 한두 군데인데, 이 광구의 목표층은 6~7개로 원유가 생산 되어도 어느 층에서 나왔는지 알 수 조차 어렵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생산량이 할파야 광구의 4~5배가 넘는 광구이니 분배율 8%라도 수익성은 훨씬 좋았다.

우리는 프랑스 측의 의견을 수렴해 배분율 9.8%를 제안했다. 계약서 제19조[비용회수 및 생산물 분배]를 2가지로 작성했다. 하나는 배분율 수치를 넣지 않은 공란으로, 다른 하나는 9.8%의 수치를 넣은 것으로 하였다. 수치를 넣은 것은 문제가 생길 것을 염려해 별도로 관리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며칠 뒤 부질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이 수치가 석유성 여러 부서에서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잘못된 것이다. 이라크 측 실무 책임자도 이 부분에 대한 잘못을 시인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최종 단계에서 배분율 수치는 공개하지 않다가 장관에게 제시했어야 되지 않았나 싶다.

그 외에도 문제가 허다했다. 송유관 사용문제, 수출 항구사용문제, 이라크 자제의 우선 사용 등은 업계의 관례에 따라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1억 달러 상당의 물자지원을 위한 차관계약은 석유성이 아닌 무역성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확실한 상환 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석유성과 연계시켜야 하였다. 무역성 입장에서는 이라크 중앙은행이 보증한다는 것이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1억 달러 차관은 광구계약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석유성의 보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보증은 이라크 국가석유판매기구가 보증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만약, 석유성 장관이 한국을 방문했다면?

알 라시드 석유성 장관은 기회가 있을 때 마다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그가 말한 한국은 6·25 전란 후 이렇다 할 자원도 없는데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라는 것이다. 더욱이 국토도 양분되고 미국, 중국, 일본 등의 강대국의 파워 플레이 속에서 이룩해 낸 한국 경제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고 한껏 치켜세워 말한 적이 있다.

알 라시드 장관은 할파야 광구 규모정도면 민간차원에서 계약을 추진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양국간의 정치적인 교류도 동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을 2번 다녀왔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중국의 고위직은 수시로 이라크를 방문하여 협의를 한다고 하였다. 그 결과로 중국과는 아다프 광구를 계약했다고 알려주었다.

석유성 장관이 중국을 2차 방문 시에 수행했던 외무부 2등 서기관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 들었다. 이 외무부 직원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냈는데 한번은 그가 자기 농장으로 초대하면서 관개시설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여 경제 제재가 끝나면 손써 보겠다고 답해줬다. 그랬더니 바로 옆의 농장이 사담 후세인 것이라며 가끔 한밤에 온다고 귀띔해 주었다.

당시 그 유명한 이라크 부수상 타리크 아지즈(Tariq Aziz)를 한 회의 석상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사실상 수상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만 이라크 헌법에 각료 회의 의장은 수상이 맡게 되어있어 후세인이 수상을 겸임하게 된 것이다. 그가 말한 요지를 요약 하면 다음과 같다.

유엔 안보리의 對이라크에 대한 각종 제재는 법적 차원에서도 모순이 있으나 이라크는 그 의결사항을 지난 6년간 충실히 이행했다. 하지만, 글로벌 파워인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전략상 이라크 제재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라크 정부의 요청은 한국 정부의 반미 노선을 원하는 것도, 친이라크 노선을 원하는 것도 아닌 객관적으로 이라크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여 유엔의 제재를 해제하는데 필요한 도움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 컨소시엄이 수년간 할파야 광구계약 협의를 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안보리에서 이라크에 대한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욱이 그는 한국이 맡고 있는 안보리 이사국 임기가 6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이 기간 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지 않는다면 계약체결에 상당히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즉, 6개월 후에는 한국 정부로서는 이라크를 위하여 아무 힘도 발휘 할 수 없게 되니 심사숙고하여 양국의 우호관계를 긴밀히 하는 것과 동시에 대형 유전을 확보,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 할 기회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는 의미이었다. 한마디로 ‘Enough is enough’. 이라크는 유엔의 경제 제재는 할 만큼 하였고 안보리의결의 법적 이행을 다 하였다는 요지다. 석유성 장관도 같은 맥락에서 한국이 현재 안보리 이사국이니 이라크 입장을 피력해 달라는 의견을 전하였다.

한국에 돌아와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한국 컨소시엄 회원사는 사장단 회의를 개최하고 당시 관련 부처인 통상산업부에 이라크 석유성 장관의 공식 방한초청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라크가 유엔 무역제재 하에 있으므로 정치, 외교적인 면을 감안 할 때 공식 초청 추진은 국가로서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민간차원에서 비공식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알려왔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공무원도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 역역했다. 감사원 감사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걸릴 일이 없으니 무탈하지만,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감사 문제 건수만 늘어나 문제가 된다는 논리다. 결국에 공식 방한초청은 벽에 부딪쳤다. 여러 안을 고려해 보았지만, 정부 말고는 그 누가 정부를 대신 할 수 있단 말인가! 1년간 이문제로 속절없이 지냈다.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탓인지 통상산업부 장관이 교체되어 이 사업을 보는 정부의 시각이 달라졌다. 공식 초청의 여지가 생긴 것이다. 신임 장관은 전임 장관보다 적극적이어서 장관 명의로 초청장 써 주겠다고 하여 꺼졌던 불씨가 다시 살아나 한숨 돌렸다. 신임 장관이 타 부처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초청장을 써준 것에 관하여 그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초청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으며 그 후 그분과 식사를 같이 할 자리가 생겨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 고마운 서신을 그 분을 존중하여 실명을 밝히지 않고 여기 게재한다.

그런데, 초청장을 가지고 바그다드로 떠나려는 하루 전날 한 통의 전화가 통상산업부로부터 걸려왔다. 호사다마일까? 한국 대통령(YS)이 며칠 후 미국 방문(공식초청이 아니었음)을 하는데 이 초청장이 노출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니 대통령이 귀국 할 때까지 당분간 보류하라는 전갈이었다. 이미 잡아 놓은 일정을 변경하기가 어려워 계획대로 한국을 출발하였다. 그해 7월에 이라크 석유성 장관의 중국 방문이 계획되어 있어 이때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초청장은 원본과 복사본을 가지고 가서 우선 복사본으로 실무자와 협의를 하고 원본은 나중에 주기로 했다. 어렵게 얻어낸 초청장인데 당장 쓸 수 없게 된 것은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는 한국 외교의 신중함일까? 아니면, 지나친 기우였을까? 어찌됐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 관리의 의견을 거스를 수 없어 대통령이 귀국 할 때까지 이라크에서 머물러 있으면서 일을 처리하여야 했다. 며칠 후 한국에서 대통령이 귀국했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원본 초청장을 정식으로 제출하였다. 석유성 실무자들은 이제 장관이 방한을 할 수 있게 되어 상당히 유리할 것이라고 좋아했다.

한국 컨소시엄은 방한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일정을 준비했다. 산업시찰, 정부관련 부처 방문, 기업체 방문 등 손색없는 일정을 마련해 놓고 기다렸으나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유엔이 추가적인 제재로 이라크 정부 고위층의 해외여행을 금지시킨다는 안보리 의결을 공표하였다. 한국이 안보리 이사국으로 여기에 찬성표를 던졌으니 이라크는 화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한마디로 ‘동냥을 주지 않더라도 쪽박은 깨지 말지’라는 속담이 머리 속을 스쳤다.

P씨 曰, “3천만 달러면 계약 OK!”

할파야 광구는 원래 이태리 ENI와 브라질의 PETROBUA가 처음 손을 댄 광구이다 상당한 양의 물리탐사와 5개 공을 시추하는 등 약 5000만 달러가 투입됐다. 하지만, 이 두 회사는 손을 떼고 한국, 중국, 호주, 일본 등 4개 국가가 경쟁을 하고 있었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으나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도 중국은 우리보다 좋은 여건에서 뒤늦게 끼어들어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특히 투자비를 어느 경쟁자보다 낮게 책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생산량은 높았다. 아마도 자국의 값싼 노동력을 투입한다는 것이 전제이었을 것이다. 또한 경험과 기술 수준도 우리 보다는 나았다. 중국은 석유자원을 확보하려고 전 세계를 누비며 광구입찰마다 참여하여 일반 가격보다 20~30% 높게 응찰했다. 할파야 광구도 놓칠 리가 만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일인당 국민 소득이 2000달러를 넘게 되면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모든 석유를 중국에서 다 소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미국이 석유부문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 중이였지만, 중국은 주 이라크 대사관에서 석유성과 직접 접촉하며,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고 있었다.

다음의 경쟁자는 호주의 BHP(Broken Hill Proprietary)이다. 호주에 기반을 둔 광산회사로 석유 외에도 여러 광물을 생산 판매하는 세계적인 회사이다. 최근에는 회사명도 BHP Billiton으로 바꿨다. 이 회사는 전 세계 수많은 유전을 보유하고 미국 멕시코만 심해 석유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호주는 대규모 밀 생산국으로 이를 활용해 이라크 석유광구를 공략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우리도 호주 밀을 사서 이라크에 주어야 할 판이었다. 이들이 제출한 자료를 입수하여 검토해보니 기술적으로 앞서 있고 경제성도 일목요연하게 표시되어 석유성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호주로서는 밀도 수출하고, 광구도 확보한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접근했는가? 우리는 기술도, 돈도 부족하지만 석유자원 확보하려는 열정과 꾸준한 노력을 경주하면서 석유성 실무자들과 인간적인 접근을 시작했다. 예를 든다면 협상자 중 한 고위층 부인이 어떤 병에 걸렸는데 혈액 검사가 바그다드에서는 불가하니 좀 도와 달라는 것이다. 쾌히 승낙하고 그 피를 아이스박스에 담아 한국에 가져와 검사하고 치료에 필요한 약도 보내 주었다. 또 한번은 자녀가 의학 공부를 하는데 의서를 구해 달라는 것이다. 그 무거운 의서 7~8권을 가지고 긴 여행을 한 기억도 생생하다. 중동도 동양이다. 결국 인간적으로 친해지니 경쟁자의 정보와 석유성내 주요 방침과 방향을 직간접적으로 알려 주었다.

석유성 실무진과 모든 협의가 끝났지만, 장관 손에 쥐어진 광구 계약서는 도무지 요지부동이었다. 답답한 차에 이리저리 수소문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중국과 호주가 상당히 진척되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이런 처지니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면 급한 김에 제 손목을 잡는다’는 몽고의 속담이 떠 올랐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 이었다. 이 때 뜻 밖에 안기부에서 한국 컨소시엄 4사를 모두 불러 융숭한 점심대접을 하면서 할파야 광구 유전 진척사항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한 로비스트 P씨를 거론하면서 만나 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진행상황을 상세히 수시 보고하라고 덧붙였다. 혹여 보고가 좀 뜸해지면 전화를 걸어와 물어보곤 하였다.

안기부에서 소개한 P씨를 만나 보았다. 그는 유엔 코피 아난 사무총장도 잘 알고, 이라크 타리크 아지즈 부수상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본 광구 계약과 관련해 그는 간단히 3000만 달러면 체결할 수 있다고 하였다. 방법은 유엔의 경제 제재를 조속히 풀어 주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누가 믿겠는가? 또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을 칠 수 없다는 생각에 단칼에 거절하니 며칠 후 다시 찾아와 체결방법을 이라크 정부로부터 확답을 받아 올 테니 200만 달러를 선수금으로 우선 달라고 했다. 우리의 답은 간단했다. 그렇게 확실하면 당신 돈으로 우선 처리하고 확답을 받아 오면 돈을 주겠다고 하니 알았고 한 후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P씨가 어떻게 할파야 광구계약에 개입하게 됐는지 알아 낼 기회가 왔다.

당시 OPEC의 의장국은 인도네시아로 임시회의를 쟈카르타와 발리에서 개최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이라크 석유성의 협상 실무책임자인 티그리티 박사가 참석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급거 인도네시아로 이동해 그를 만났다.

그에게 우선 각국의 추진 상황을 물어 보니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중국은 아다프 광구, 소련은 웨스트 고로나 광구계약에 각각 서명하였으나 실제 작업은 하지 못하고 자료만 수집, 분석할 정도라는 것이다. 이라크 내에도 별도의 사무실을 개설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소련도 최근 1억 달러 차관을 추진 중인데 결정되면 그 방법을 참고로 알려 주겠다고 하였다.

프랑스(ELF/TOTAL사)가 서명 할 차례인데 아직까지 별진전이 없이 시기를 조율 중이라고 전했다. 이유는 최근 TOTAL이 이란과 가스 개발계약을 체결하면서 미국 뜻에 거슬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영석유 회사인 ELF가 자국정부의 눈치를 보는 중이라고 한다.

중국도 할파야 광구에 관하여 정치적 공세로 압력을 넣고 있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이라크 정부는 안보리에서 중국이 이라크에 대해 미온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고 소련만큼 적극적이지도 않아 별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장쩌민 주석이 미국을 방문하여 더욱 더 미온적이게 되었다.

그는 일전에 말했던 것을 상기시키며, 현재의 여건상 할파야 광구는 완전 경쟁으로 처리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다. 왜냐면 미국이 워낙 완강하여 중국도, 한국도, 호주도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한국 컨소시엄과 이니셜한 계약서는 장관 손에 있는데 아마도 정치, 외교적인 면을 떠나서 경제적 이용 가치를 고려하는 것 같았다. 석유성 장관이 한국을 방문하지 못하게 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당시 한국이 안보리 이사국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광구계약에 있어 힘을 받기는 힘들게 되었다. 부수상인 아지즈는 정치적인 것에만 치중하고 있었으며, 또한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상 이라크를 지원하는 발언을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티그리티 박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 시점에서 우연치 않게 한국인 P씨가 부수상을 먼저만나고 1997년 10월 초에 석유성 장관을 만나는 자리에 장관이 불러서 참석한 바 있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P씨는 “나는 과거 한국 정부의 유엔 Assistant였다”하며 “유엔안보리에 이라크를 위하여 로비를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할파야 광구를 언급 했는데, P씨가 협상내용를 상세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그에게 설명을 해 준 것 같았다. P씨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유엔 안보라에 대한 로비 자금은 한국컨소시엄에서 기부형식으로 염출하여 충당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장관은 “왜 원유를 팔아서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였고 기금염출에 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후 장관은 그달 말경 나를 불러 염두해 두지 말라고 하였다.

티그리티 박사도 솔직히 P씨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다만 P씨가 부수상을 만나서 “이라크를 도우려는 내 친구가 많으니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경제 제재를 해제할 수 있도록 돕겠으니 나를 믿어 달라”는 정도의 이야기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부수상이 구체적인 돈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내가 알기로 2000만 달러를 장관에게 말했다고 한다. P씨가 이렇게 구체적인 금액과 할파야 광구에 관하여 소상하게 알고 있어 이라크 측에서는 한국 컨소시엄이 P씨를 고용한 줄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한국 컨소시엄은 국영석유회사, 삼성, SK 등 굴지의 회사로서 과거 많은 문제를 일으켰던 P씨와 같은 사람을 로비스트로 절대로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로비스트를 쓸 생각이 없었다. P씨는 우리에게 1000만 달러를 자기 몫으로 얹혀서 3000만 달러를 요구한 것만 보아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 않는가? 앞으로 유사한 일이 생기면 즉시 알려 줄 것을 요청하고 마무리했다.

그런데 몇 년 후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P씨 친구라며 증인을 서 달라는 전화이었다. 내용인 즉 P씨가 고소를 당해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라크와 어떤 거래도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증인을 서 달라는 것이다. 우리와는 어떤 거래도 없었고 다만 귀찮게 했는데 증인을 되어 달라니 가당치도 않아 3번이나 거절했다. 그 후 그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글: 계충무 국제아동돕기연합 고문

계충무 고문은 서울대 경제학을 전공했고 한국전력, 대한석유공사(현 SK), 동아건설 등을 거쳐 한국석유공사 부사장을 역임했다. 한얼상사와 코람자원의 대표이사 활동으로 국제 자원개발 사업에 남다른 성과를 내기도 했으며 현재 HI&T 사장으로 취임해 이라크 할파야 유전개발 사업을 협상중이다.

*상기 기사는 에너지코리아뉴스의 자매지 월간 CEO ENERGY 2013년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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