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인터뷰] ‘레미제라블’ 조정은 “세번째 판틴도 ‘처음인 것처럼’ 연기해요”

[인터뷰] ‘레미제라블’ 조정은 “세번째 판틴도 ‘처음인 것처럼’ 연기해요”

  • 기자명 정아람 기자
  • 입력 2024.02.10 04:16
  • 수정 2024.02.10 12:00
  • 0
  • 본문 글씨 키우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레미제라블’ 세 시즌 연속 ‘판틴’ 역 꿰차…‘익숙함’ 버리고 오디션 참여
20분 남짓 무대 등장에도 ‘판틴만의 드라마’ 보여주는 것에 책임감

뮤지컬 '레미제라블'  '판틴' 역 배우 조정은 / 사진 제공=(주)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  '판틴' 역 배우 조정은 / 사진 제공=(주)레미제라블코리아

 

[EK컬쳐] “‘익숙해 보인다’라는 연출의 코멘트를 듣는 순간 저도 동의가 됐어요. 세 번째 판틴 오디션에서는 역할에 ‘익숙해 보이지 않게’ 준비한 덕분에 다시 레미제라블 무대에 설 수 있었죠.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레미제라블’ 공연이기 때문에 제게는 매 회차 무대가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이에요. 누가 봐도 조정은의 판틴은 고난을 처음 겪은 사람처럼 보이도록 연기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8년 만에 돌아왔다. 원조 판틴 조정은도 함께다. 최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조정은(44)은 자신이 세 번 연속 판틴을 맡게 된 것에 대해 기쁨을 전하면서도 기회를 거머쥐는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먼저 조정은은 “‘레미제라블’이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8년 만에 돌아온 이번 시즌이 제가 판틴을 연기할 수 있는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더 나이를 먹기 전에 판틴을 연기할 수 있는 나이에 이 역할을 다시 맡게 돼 기쁩니다.”라고 무대에 돌아온 소감을 전했다.

그러나 판틴으로 무대에 돌아오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익숙함’이 문제로 작용했다. 뮤지컬 배우들이 여러 시즌 한 작품에 참여한다는 건 관객의 인정이자 배우의 트로피다. 그러나 레미제라블 측은 조정은에게 ‘판틴이 모든 일을 처음 겪은 사람처럼 연기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조정은도 이에 동의했다. 무엇보다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기를 바랐다.

“판틴은 너무 많은 걸 경험하면 안되는 캐릭터예요. 카메론 매킨토시의 코맨트처럼 사람이 많은 걸 알게 되면 상황에 익숙해질 거예요. 새로움이 없는거죠. 배우 역시 나이가 들면서 알게되는 것들이 많아요. 그런데 배역들은 그 특정 나이대에만 할 수 있는 감성이나 느낌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래서 판틴을 연기할 때 정답을 정해놓고 하지 않아요. 연습할 때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속으로 난리를 피우죠.(웃음) 무엇보다 제가 판틴을 연기할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선을 넘지 않기를 바라는 편이에요.”

뮤지컬 '레미제라블'  '판틴' 역 배우 조정은 / 사진 제공=(주)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  '판틴' 역 배우 조정은 / 사진 제공=(주)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의 대표작으로 한국에서는 세 번째 시즌을 맞았다. 조정은이 연기하는 판틴은 공장 직공으로 일하며 홀로 딸 코제트를 기르는 미혼모다. 세 시간에 달하는 긴 공연 시간 중 작품 초반에 등장해 고단한 삶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판틴은 20분 남짓 무대에 등장하지만 그녀가 겪은 고통의 무게로 관객들의 마음을 짓누른다. 조정은은 한때는 사랑도 하고, 꿈을 꿨지만 결국 모든 희망을 잃고 절규하는 듯한 판틴의 넘버 ‘I dreamed a dream’을 부를 때 “판틴만의 드라마를 쓰고 있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넘버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져요. 짧은 시간 등장하지만 그 안에 그녀의 인생 모든 게 녹아있죠. 최대한 기량을 발휘해서 노래 한 곡으로 판틴의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고 싶어요.”

판틴의 드라마는 매 회차 끝을 맺지만 조정은은 400회 이상 연기를 해도 새로운 것들을 발견한다고 스스로 놀라워했다.

“2013년 초연 때는 연출이 요구하는 내용을 수행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아요. 대사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전달하는 과정에 집중하다 보니 작품을 즐길 여유가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인물의 심경이 어떨지를 고민하게 됐어요. 특히 현실의 제게 자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존재를 대하는 심정이 어떨지가 절실하게 와닿아요. 판틴이 딸(코제트)을 대하는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래서인지 몰라도 초연 때는 분량 때문에 원작을 다 읽지 못했는데 세 번 째 시즌에 이르러서야 책 내용이 다 들어오더라고요.(웃음)”

뮤지컬 '레미제라블'  '판틴' 역 배우 조정은 / 사진 제공=(주)레미제라블코리아
뮤지컬 '레미제라블'  '판틴' 역 배우 조정은 / 사진 제공=(주)레미제라블코리아

 

눈 앞에 있는 과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다 보니 어느새 24년 차 뮤지컬 배우가 됐다. 2001년 서울예술단 소속 앙상블로 뮤지컬에 데뷔한 조정은은 ‘선녀’라는 별명을 안겨준 ‘피맛골 연가’를 비롯해 ‘로미오와 줄리엣’, ‘지킬 앤 하이드’, ‘엘리자벳’, ‘드라큘라’ 등 인기 뮤지컬의 여주인공을 주로 맡았다. 그녀는 한때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자신의 무대에 만족하지 못해 배우로서 매너리즘에 빠진 시기도 있었으나, 자신만이 가진 연기적 섬세함에 집중하면서부터 무대를 즐기게 됐다고 고백했다.

조정은은 “과거에는 작품을 하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커튼콜에 나가서 관객들의 박수를 받는 게 부끄러웠죠. 부족한 것만 보였고, 스스로가 못마땅했어요. 그런데 ‘드라큘라’를 하면서 섬세하고 작은 것에 집중하는 저만의 고유성을 인정하게 됐어요. 그런 저를 관객들도 하나의 스타일로서 받아들이는것 같아요. 지금은 커튼콜 순간을 충분히 누리고 있습니다.”라며 관객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한편으로는 배우로서 책임감도 생겼다. 작품과 연기에만 집중하던 배우에서 작품의 흥행과 관객들의 만족도까지 두루 신경 쓰는 배우가 됐다. 관객들에게 질문도 던지고 있단다.

“요즘 뮤지컬 비싸잖아요. 관객들의 시간과 노력, 금전적인 부분까지 생각하는 편이에요. ‘레미제라블’은 세 시간을 앉아서 봐야 해요. 어떤 관객에게는 고문일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고, 관객들의 기분도 살펴요. 특히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부를 때 우리 배우들은 속으로 ‘당신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사는가’라고 무대에서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죽음 앞에 섰을 때 나는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살았는지 스스로 던지지 못했던 질문을 ‘레미제라블’이 하고 있다는 게 훌륭한 것 같습니다.”

올해 조정은의 목표는 ‘아쉬움’없이 ‘레미제라블’을 보내주는 것이다.

“온전히 지금을 누리고 싶어요. 작품이 끝날 때 아쉬움이 남는 걸 싫어하거든요. 또 그동안 제 나름대로 소처럼 열심히 일한 것 같아요. 그래서 레미제라블을 잘 마치고, 쉴 예정입니다. ”

저작권자 © 에너지코리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