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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살아있어 행복한 이야기

그냥 살아있어 행복한 이야기

  • 기자명 정욱형 기자
  • 입력 2009.12.0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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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금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

또 다시 연말이다. 아무래도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시기다. 각종 연말 모임이 많아 연중 어느 때보다 바쁜 때이지만 가슴 한 구석에 숨겨둔 감성이 또 한 살을 먹을 생각에 먹먹해진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이나 장애인을 더 애정어린 눈으로 둘러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지난 5월에 작고한 장영희 교수의 에세이집‘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손길이, 눈길이 머문다.

10월 중순 직원들과 함께한 가을 등산에서 그만 발목 골절상을 입었다. 난생처음 119신세를 져야 했고 부러진 뼈에 철심을 박는 수출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한 달 동안 깁스를 해야 했다. 그 이후에도 목발과 헤어지기까지 또 열흘이 더 걸렸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평지를 걷기도 힘들었지만 계단을 만나거나 언덕을 만나도 한숨을 쉬어야 했다. 콜택시를 부르지 않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불행히도 골절상을 입은 곳이 오른 다리의 발목이라서.

다행인 것은 목발과 함께한 나의 한 달여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됐다. 웃을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 것, 아니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제까지 살아온 기적에 경의를 표하고 싶고 또 살아갈 기적에 기도를 하게 된다.

평생 목발과 함께 했던 장영희 교수이기에 평범한 일상마저 그렇게 따뜻하게 글로 녹여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됐지만 역경을 딛고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교인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번역가와 수필가로도 활동했다.

2001년부터 유방암, 척추암, 간암으로 투병하다가 올해 5월 사망했다. 그래도 그녀의 글들은 밝고 늘 희망에 차 있다. 그녀의 마지막 에세이집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다. 암투병 중에 완성한 원고지만 밝고 따뜻하고 활기에 넘치는 그녀의 평소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지금 힘겹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된다는 희망을 그녀는 말하고 있다.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라
'영어 속담에 “네가 누리는 축복을 세어보라(Count your blesssings)"라는 말이 있다, 누구의 삶에든 수없이 많은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말이다. “천형(天刑)”이라고 불리는 내 삶에도 축복은 있다. 첫째, 나는 인간이다. 개나 소, 말, 바퀴벌레, 엉겅퀴, 지렁이가 아니라 나는 인간이다.(중간 생략) 둘째, 내 주위에는 늘 좋은 사람들만 있다. 좋은 부모님과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태어난 축복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주변은 늘 마음 따뜻한 사람들, 현명한 사람들, 재미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중간 생략) 셋째 내게는 내가 사랑하는 일이 있다. 가치관의 차이겠지만, 난 대통령, 장관, 재벌 총수보다 선생이 훨씬 보람있고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한다.(중간 생략) 넷째, 남이 가르치면 알아들을 줄아는 머리와 남이 아파하면 같이 아파할 줄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중간 생략)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이 멋진 세상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축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너무나 보람있고 멋진 일, 나보다는 세상이나 인류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마음, 늘 긍정적인 사고... 난 내가 누리는 축복에 행복하다. 독자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시 힘든 순간이 찾아온다고 해도...

침묵과 말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침묵은 금이다”, “적게 말할수록 후회가 없다” 등 말은 적게 할수록 좋고 꼭 필요한 말만을 골라서 해야 한다고 무수히 강조해 왔다. 그러나 후회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말만 골라서 하고 침묵을 지키고 산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세상이겠는가. 가끔은 실없는 소리를 해서 웃기기도 하고, 화가 나면 혼자 누군가를 향해 욕도 해보고, 실속 있는 결과가 없더라도 잡담을 나눌 수 있는 것이 세상사는 재미 아닌가’

말 많은 나로서는 절대 공감이 간다. 말하기 좋아하는 그녀는 성대부근에 생긴 돌기로 사흘 동안 말을 하지 못했던 에피소드와 함께 이 글을 썼다. 발목 골절로 걸을 수 없는 것과 말을 못하는 것 어느 것이 더 불편할까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무위(無爲)의 재능
'<과자와 맥주>라는 책에서 서머셋 모옴은 한 여자 인물을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능력-역설적인 말이지만 그것도 하나의 능력이나 재능인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내 주변을 보면 한시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주 안절부절,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하다못해 층계라도 올라갔다 내려갔다 운동을 하거나 그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거나 정 할 일이 없으면 괜히 시계를 보거나 하다못해 주위 사람들에게 공연히 짜증을 내기도 한다’사실 내 이야기다. 무위의 재능이 없는 슬픈 인간.

그녀는 무위의 재능도 있다는데... 너무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어떻게 차분한 시간이 없느냐 말이다. 다들 바쁜 연말 무위의 재능도 있음을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다.

그녀의 에세이는 이렇다. 그냥 일상의 이야기고, 따뜻한 이야기다. 간간히 나오는 그녀의 투병이야기가 오히려 건강한 나에게 감사하고, 살아온 모든 기적에 행복해진다. 또 살아갈 기적들에게도.


추천의 글
뒤로 물러남이 없는 힘찬 물줄기처럼 읽다보면 에너지가 충전된다.

이 책 속의 글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뒤로 물러남이 없다. 폭포에서 투명한 물줄기가 힘찬 소리로 떨어질 때 같은 힘이 문장 속에 스며 있다. 체험에서 우러나온 새겨두고 외워 두고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이 냇물처럼 흘러 강을 이룬다. 읽다보면 에너지가 충전된다. 뭔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보고 싶게 만든다. 이 글을 쓴 그는 이 세상에 희망을 퍼뜨리는 바이러스임에 틀림없다!  - 신경숙(소설가)

지진으로 무너진 집에서 30여 시간 만에 구조된 93세의 이탈리아 할머니는 뜨개질을 하면서 공포를 이겨 냈다고 한다. 장 교수의 글쓰기는 고단한 삶 속에서도 칭얼대지 않고 오히려 흥얼거리도록 만드는 마법의 뜨개질이다. 한 올 한 올 정성으로 뜬 스웨터를 입고 나들이하면 까부는 바람쯤이야 제풀에 잦아들 게 뻔하다.  - 주철환(전 경인방송 대표)

살다 보면 사람 때문에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무작정 사람을 피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곧 깨닫게 된다. 그 상처 또한 사람으로 인해 치유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 한 권의 책으로 많은 위안을 받는다.  - 박경림(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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